"고물가‧저성장시대로 접어든 지금 과도한 기부채납이 조금 남은 성장여력마저 가로막고 있습니다."(서울 A구청 도시계획담당자)
과도한 기부채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 사업성 악화로 애를 먹고 있고, 관리를 도맡는 일선 행정관청에서도 관리 예산과 인력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어서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는 한 때 추정분담금이 5억원대로 알려지면서 시공사와 집행부가 교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공시지가 기준 한 채당 가격이 약 3억원대인 이 단지의 추정분담금이 과도하게 나온 것은 3배 이상 평형 확장이 될 예정인데다, 일반분양이 많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상계주공5단지의 정비계획을 살펴보면 현재 840가구에서 996가구로 약 156가구가 늘어난다. 다만 156가구 가운데 공공임대로 기부채납돼 일반분양은 12가구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채당 15억원에 판다고 해도 일반분양 수익이 180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공공임대주택은 기본형건축비의 80% 수준을 기준으로 조합에서 공공에 매각한다. 현재 기본형건축비는 1㎡ 당 210만6000원으로 이를 환산하면 평당 약 557만원이 된다. 최근 서울 내 정비사업의 평당 공사비가 850만~1000만원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평당 300만원꼴의 적자를 보는 셈이다. 올해 초 매입단가 기준이 40%가량 오르기 전에 적자 폭이 더 컸다.
도로와 공원 기부채납은 공공임대주택보다 사업성이 더 악화된다. 땅으로 기부채납을 하기 때문에 연면적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가령 용적률 300%인 곳에서 1000㎡의 도로나 땅을 기부채납하면 연면적으로는 3000㎡가 줄어들게 된다.
전문가들은 기부채납이 원래 의미와 전혀 다르게 오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부채납은 기부(寄附)와 채납(採納)의 합성어다. 민간에서 기부를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공공에서 골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원래 의미다. 그런데 최근 공공에선 용적률을 올려주는 대신 기부채납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도시계획기술사 L씨는 "개발이나 정비사업으로 거주인구나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인프라 확충이 필요한데, 민간에선 확충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면서 "그래서 민간에서 무상으로 인프라시설을 공공에 제공하면 공공에서 운영‧관리해 공익적으로 활용하는 게 기부채납의 본래 의미"라고 했다.
기부채납이 원래부터 '골칫거리'였던 것은 아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 성장기엔 부의 편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기부채납은 개발이익 일부를 공공으로 돌려 공익을 확보했다. 돈이 없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도로‧공원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큰 일조를 한 셈이다.
다만 최근엔 기부채납 시설을 관리하는 일선 행정관청에서도 기부채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서울시와 구청에서 도시계획담당자로 근무했던 전직 관료 B씨는 "서울만 하더라도 기부채납을 받아 놀리고 있는 땅이 상당히 많다"면서 "공원 같은 시설은 주택사업으로 소규모 공원이 늘어난 탓에 예산과 인원이 부족해 기존 공원‧녹지와 자연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기부채납은 노후주거지 정비를 가로막는 허들로도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기대 분양수익이 크지 않은 서울 외곽과 지방이나 현황용적률이 높은 중‧고층단지, 가구당 대지지분이 적은 소형평형 단지들이 기부채납 때문에 사업성이 나빠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계주공5단지를 비롯한 노원 상‧중‧하계와 도봉 창동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기부채납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안으로는 사업별‧단지별로 기부채납을 받는 대신 기여금을 적립해 공공에서 지구단위로 친환경이나 에너지효율 강화 등 '탄소중립' 인프라구축을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일각에선 민간에서 구축한 인프라를 무상으로 받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관계자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지금 1960~1980년대 논리로 민간에 공공인프라 구축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면서 "정비사업의 경우 공적자금을 사업비로 투입해 불필요한 금융비용을 절감해주고 투자비용에 비례해 임대주택이나 공적인프라를 '배당'받는 식으로 제도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