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사업 정체 탓에 건설 PF '동맥경화'···해소방안 없나

2024-11-04

"분양성 악화로 기약 없이 사업이 밀리자 기존에 맺어놓은 책임준공 약정도 적체된 상황입니다. 동맥경화가 따로 없습니다."(금융권 관계자)

건설업계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우발채무 해소에 애를 먹고 있다. 분양성 악화로 제때 사업을 마무리 못하는 곳이 늘어난 탓이다. 기존 PF가 해소되지 못하자 건설사들이 분양성이 좋은 곳에서조차 새 사업을 벌이는 것을 꺼리는 현상도 나타나는 모양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시공사 입찰을 진행한 서울 23개 사업장 가운데 경쟁입찰로 시공사를 뽑은 곳은 단 2곳에 그쳤다. 올해 시공사 선정을 앞둔 곳 중에선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맞붙는 '한남4구역'과 삼성물산과 SK에코플랜트의 참여가 유력한 '방배7구역' 정도만 경쟁입찰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공공사업도 경쟁입찰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공사비가 10조5300억원에 달하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는 4차례 유찰 끝에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 건축·시스템 2공구 공사는 6차례나 유찰됐다.

원가부담 상승은 건설사들이 경쟁입찰을 꺼리는 표면상의 이유다. 최근 건설사들의 평균 원가율을 90~95% 수준이다. 일부 건설사는 원가율이 100%가 넘는 곳도 있다. 2020년 정도까지만 해도 80% 중후반의 원가율을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사업성이 악화된 것이 더욱 와 닿는다.

다만 업계에선 PF 우발채무를 원가율 부담보다 더 큰 리스크로 꼽는다. 원가부담의 경우 공사비 증액협상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한 반면 PF 우발채무는 기존 사업 뿐 아니라 신규 사업 확대에도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10대 건설사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10대 건설사 중 부채비율이 100%를 넘기는 곳이 단 한군데도 없다. 하지만 각 건설사에서 제공한 '책임약정'을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책임약정으로 발생한 '우발채무'를 감안하면 10대 건설사 모두 자산보다 큰 리스크를 안고 있다.

책임약정은 크게 채무에 대한 직접 보증을 서는 '지급보증약정'과 계약을 이행하는 '이행보증약정' 나뉜다. 지급보증은 발주처가 도산했을 때 건설사가 대신 빚을 갚는 구조다. 이행보증은 계약상 이행의무인 건물 준공을 완수하면 빚을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제공자가 갚아주고, 그렇지 못하면 건설사가 떠안는 것을 말한다.

업계관계자들은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채무자인 시행사와 채권자인 금융권이 사업성이 악화한 부지를 계속 끌어안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관계자는 "분양성 악화로 기대 분양가가 낮아지면서 채무자인 시행사는 자신이 토지확보를 위해 투입했던 원금회수 때문에 토지재매각이나 분양을 꺼리고 있다"면서 "이 경우 채권자인 금융권에서 경‧공매나 강제매각을 진행해 땅값을 낮춰야하는데, 금융권도 재무악화 우려에 몸을 사리고 있다"고 했다.

줄도산 우려도 금융권에서 선뜻 사업의 재구조화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우발채무는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면 부채로 잡히지 않는데, 파산이나 도산으로 사업이 중단되면 곧장 부채로 전환된다. 만약 일부 현장의 파산으로 대주단의 재무적 리스크가 커지면, 대주단이 방어를 위해 다른 건설사들에게도 상환을 요구하는 연쇄 부실화에 빠질 수 있다는 것.

커질 대로 커진 우발채무 부담은 분양성이 나쁘지 않은 서울과 수도권지역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건설사들이 우발채무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해 신규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시공사를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

전문가들은 PF업계에 큰 충격이 오겠지만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사업을 중심으로 재구조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노치영 키파스자산운용 전무는 "부동산이 살아나려면 결국 언제가 됐든 바닥을 한번 쳐야한다"면서 "지금 저축은행 등에서 지방 사업을 억지로 붙들면서 버티고 있는데 더 큰 버블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땅값을 낮춰 사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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