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불긍세행, 종루대덕 (不矜細行 終累大德)’
영ㆍ정조 시대 사람으로 빼어난 문장가로 이름 높은 이덕무가 지은 《사소절(士小節)》에 나오는 문구다. ‘긍(矜)’은 소중하게 지킨다는 뜻이고, ‘누(累)’는 폐를 끼치거나 그릇되게 한다는 뜻으로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큰 덕을 허물게 된다’라는 뜻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처럼, 사소한 일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끝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이덕무는 선비들이 이를 알고 항상 경계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 시대에 도덕과 예절이 무너져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지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기고, 선비가 지켜야 할 소소한 예절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 《사소절》을 썼다.
지은이 정성기는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많은 소설과 평전을 쓴 바 있고, 특히 ‘사소절’을 접한 뒤 작은 예절의 중요성을 일깨우려 했던 이덕무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해 이 책, 《양반가문의 쓴소리》를 집필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선비의 소소한 예절과 몸가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되짚고,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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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예절의 기본 요소로, 내적으로 갖춰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과 아홉 가지 외적인 자세, 그리고 다섯 가지 윤리를 들고 있다. 네 가지 마음가짐은 잘 알려진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고 다섯 가지 윤리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아홉 가지 외적인 자세, 곧 ‘구용(九容)’은 조선시대 서당에서 가르치던 필수 교재 가운데 하나인 《계몽편》의 끝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발을 무겁게 하라는 ‘족용중’, 두 손을 공손하게 하라는 ‘수용공’, 눈에 총기를 모아 맑게 뜨라는 ‘목용단’,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구용지’, 말소리를 높이지 말고 차분하고 조용하게 하라는 ‘성용정’, 머리를 똑바로 세우라는 ‘두용정’, 기운을 엄숙하게 하라는 ‘기용숙’, 덕스럽게 서 있으라는 ‘입용덕’, 얼굴빛을 씩씩하게 하라는 ‘색용장’이 구용이다.
이덕무는 이런 예절들이 우환을 막아주는 성벽과 같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지켜야 할 예절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이것을 ‘사전(士典)’이라 하여 성행(性行), 동지(動止), 언어, 복식, 근신, 인륜, 사물 등으로 나누어놓았으나, 지은이는 그 항목과 관계없이 재구성하여 이덕무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이덕무가 제시한 선비의 성품이다. 선비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성품의 목록에는 온순하고 단아한 ‘온아(溫雅)’, 맑고 깨끗한 ‘교결(皎潔)’, 정확하고 민첩한 ‘정민(精敏)’, 너그럽고 큰 ‘관박(寬博)’이 있다.
(p.227)
위와 같은 네 가지 성품을 소유한 군자는 인(仁)의 도리를 체득한 자라고 할 수 있다. 인(仁)은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라 일컬어진다. 군자가 인의 도리를 체득하면 시시각각 만물을 생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을 비롯한 자연 만물을 생기 있게 살아나게 한다. 하지만 말에 질서가 없거나 몸가짐이 흐트러지면 인의 도리에서 멀어진다.+
지은이는 얼핏 보면 ‘온아’와 ‘정민’은 대조적인 성품일 것 같으나 온아하면서도 얼마든지 정민할 수 있고, 교결하고 정민하면 마음이 좁을 것 같으나 교결하고 정민하면서도 관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진정한 선비라면 이런 네 가지 면모를 두루 갖추어야 ‘만물을 생기 있게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인(仁)을 체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무는 ‘근신’ 편에서 삼가야 할 것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식사를 마치면 반드시 수저를 가지런히 놓되 손잡이 끝이 상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을 물릴 때 수저의 끝부분이 문설주에 부딪혀 떨어지기 쉽다.
(p.313)
이덕무가 어릴 적에 수저 끝이 상 밖으로 나오게 놓았더니 삼촌이 그 점을 지적하며 경계하였다. 그 이후 이덕무는 일생 동안 식사를 마치고 상을 물릴 때마다 삼촌의 충고를 기억하고 수저 끝이 상 밖으로 나가지 않게 가지런히 놓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일 것 같은 이런 소소한 예절이 한 사람을 이루는 바탕이 되고, 나아가 한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둑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구멍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소소한 예절이라도 될 수 있으면 지키려 하는 노력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새길 부분이 많은 이덕무의 ‘예절 특강’은, 지은이의 풍부한 해설과 더불어 ‘양반가문의 쓴소리’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뭐든지 편한 방식대로 하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이런 쓴소리, 한 번쯤 필요한 것 같다. 옛 선비의 생각과 바른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