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 다 사놨는데…” 현대차-SK온 기약없는 구매 지연에 협력사 고충

2025-05-07

현대자동차그룹과 SK온이 미국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 투자가 지연되면서 장비 협력사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발주에 따라 공장에 들어갈 설비를 준비했는데, 1년 넘게 구매 여부가 결정되지 않고 있어서다.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까지 막대한 자금이 투입한 상황이어서 경영위기를 촉발하는 시한폭탄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SK온은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연간 35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기로 했으나 전기차 캐즘 여파로 계획을 변경했다.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줄면서 당초 계획했던 8개 생산라인 대신 4개 라인만 우선 구축하고 나머지를 보류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장비사들은 8개 라인에 대한 주문(PO)을 받고 제품을 만들었는데, 절반이 뚝 사라진 것. 취재를 종합하면 대부분 장비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구매하고 일부 제작을 진행하다가 중단한 상태로 파악됐다.

일반적으로 장비사들은 전체 대금의 30%를 선급금으로 받아 제작에 나선다. 이를 토대로 장비에 필요한 소재나 부품을 사고, 인력도 투입한다. 나머지 70%는 장비를 선적(60%)하고 공장에 최종 설치(10%)할 때 받는다. 장비사 입장에서는 미리 비용을 집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 그런데 이미 상당 자금이 투입된 상황에서 현대차와 SK온이 구매를 보류하니 충격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시황에 따라 투자가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장비를 언제 다시 사겠다는 건 지, 또는 구매를 철회하겠다는 건 지 알 수 없는 상태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구매를 취소하면 일부 대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와 SK온 합작 투자는 이런 기약조차 없다. 업체당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 수준까지 미수금으로 쌓여, 중소기업이 다수인 장비사들의 자금과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SK온 협력사인 A사 관계자는 “장비를 선적 및 설치해야 중도금과 잔금을 받을 수 있으나 현재는 아무런 의사 결정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언제 다시 구매한다는 건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투자를 철회한다는 얘기도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협력사인 B사 관계자는 “대부분 장비사들이 30% 선급금만 받고 장비를 제작한 상태인데, 인플레이션 등으로 실제 투자된 자금은 더 커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장비 업체에 대한 경영 압박은 부품, 소재 업체들로 전이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1차 협력사인 장비 업체에 원자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2차 협력사들은 규모가 더 작은 만큼 자금난이 더욱 큰 상황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사례는 빠르게 성장하던 전기차 시장은 급제동이 걸리면서 부쩍 늘어나는 모습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확산하고, 전 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급 정책도 속도조절하자 그 여파가 올 들어 본격적으로 배터리, 충전기 등 관련 후방 산업계로 번지고 있다. 노스볼트와 같은 신생 배터리 업체의 파산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거나 자금 결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충을 받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B사 관계자는 “SK온은 물론 최종 고객사인 현대차의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SK온도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배터리를 납품하다보니 현대차의 의사결정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C사 관계자는 “2차 협력사들에 대해서는 관련 대금 지급이 모두 이뤄진 상태인데 정작 장비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구매 지연에 대해 SK온 관계자는 “예정대로 합작공장을 추진할 방침”이라면서 “시장 수요를 면밀하게 살펴 향후 운영 방안을 조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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