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무 구조 악화로 상장 폐지 위기에 놓인 배터리 제조 업체인 금양발 리스크가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업계로 번지고 있다. 금양에 자재와 설비를 공급하고도 거래 대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나타나 이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될지 우려된다.
배터리 장비 업체인 갑진은 최근 감사보고서를 통해 “금양 매출채권 576억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금양의 유동성 악화로 대금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며 “이에 대한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대손충당금은 채권을 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미리 손실로 반영해 처리하는 것이다.
갑진은 이 때문에 “유동성 부족이 심화됐으며 단기 부채 상환 능력도 불확실성이 생겼다”며 “추가 자금 조달과 비용 절감을 추진하겠으나 성공적으로 이뤄질 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갑진은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활성화 공정 장비사다. 활성화 공정은 배터리 셀에 전기적 기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갑진은 금양으로부터 대규모 주문을 받았으나 금양이 위기에 빠지면서 연쇄 충격을 받았다.
믹싱 장비 업체인 윤성에프앤씨도 금양발 후폭풍을 맞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4월 금양과 375억원 규모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대금 수령액은 56억원 수준이다. 회사 측은 “계약에 따라 판매와 공급 이행, 대금 수령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라고 공시했으나, 불확실성이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배터리 장비 기업 A사는 금양과 맺은 1000억원 규모 설비 공급 계약 중 대금을 200억~300억원 가량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사도 총 계약금 300억원 중 10%만 회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사례만 모아도 금양이 장비 협력사에 지급하지 못한 대금은 최소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중도금과 잔금 등 정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미 금양에 공급할 장비 제작에 돌입한 업체들은 비용을 회수할 수 없어 고스란히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전기차 수요 감소로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국내 이차전지 소부장 산업계에 미칠 여파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금양이 협력사에 장비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건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받을 정도로 재무 구조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한울회계법인은 “금양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6028억원 더 많아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할 만큼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금양은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 있다. 회사는 한국거래소에 이의 신청을 제기한 상태로, 거래소는 금양이 제출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심사하고 있다.
발포제 제조사인 금양은 신성장 동력 육성 차원에서 배터리 사업에 진출했다. 1조3000억원을 투자해 부산 기장군에 공장을 건설하고 배터리 생산을 위한 장비도 발주했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과 자금 조달 과정에서 위기가 시작됐다. 지난달에는 부산본부세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금양이 추가 자금 조달에 성공, 배터리 공장을 완공하고 협력사 대금 지급을 완료해야 금양과 계약을 맺은 장비 업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다만 상장폐지 사유까지 발생하면서 시장 신뢰를 잃은 만큼 자금조달이 원활히 될 지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장비 업체가 지난해부터 전기차 캐즘이라는 전방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금양 여파로 고충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