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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지난 2월 15일 저녁 광주광역시 금남로의 한 교차로, 타지에서 온 듯한 60대 여성 A씨가 한 무리의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A씨 손에는 둘둘 말아놓은 대형 깃발이 들려 있었다. 반대편의 여성들은 이내 그 깃발의 의미를 알아챈 듯 보였다.
“태극기예요?”, “광주엔 왜 왔어요?”, “그 집회는 돈 준다면서요?”
이날 광주에선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5명의 광주 시민에게 길을 물어본 A씨는 이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서 왔다. 태극기로 시작된 이들의 실랑이는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가량 계속됐다. 평행선을 달리던 끝에 양측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헤어진 지 30분도 안 돼 통화가 이뤄졌다. 기차역으로 가던 A씨에게 전화를 건 광주 시민은 “광주까지 온 손님인데 저녁식사 대접도 못 하고 그냥 보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A씨는 지난 2월 18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정이 많은 사람들을 누가 갈라놨냐. 정치인들이 갈라놨잖아요. 즈그 편은 즈그 편 것만 보고, 우리 편은 우리 것만 보고”라고 했다.
그의 말에는 이른바 ‘극우세력’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이 담겨 있다. 하나는 정치가 이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점, 또 스포츠 경기처럼 우리 편과 상대편으로 피아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 같은 편 내에서 동질적인 의견만을 증폭해 왔다는 점, 그리고 헌정을 중단시킨 계엄조차 진영 대결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끝으로 극우에는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동료 시민으로서 그들에게 아직은 대화를 걸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주간경향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60~70대 고령층이 5명, 2030 남성이 5명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한 계엄을 옹호하는 이들의 말을 활자화하는 것은 자칫 의도와 무관하게 이들의 행동을 합리화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 여론이 30~40%대로 높게 나타나는 바, 하나의 현상으로서 광장에 등장한 극우세력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를 알아야, 사회적 해법도 마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광장에 나온 이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생애사 전반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이나 집회에 참석한 계기가 저마다 달랐다.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정한 경향은 발견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이끈 ‘원조 태극기 부대’보다는 계엄 국면을 전후해 새로 합류한 이들이 많았다. 예컨대 인터뷰에 응한 10명 중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는 1명이었고,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을 전후로 광장에 합류한 이가 3명, 나머지 6명은 계엄 이후 광장에 나왔다. 과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계열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현재 이들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반대를 넘어 혐오와 공포가 결합한 무언가였다. 인터뷰에 응한 2030 남성들은 저마다 “내가 광화문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대표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반페미니즘 정서 등 상당한 동질성을 보였다.
이들은 비상계엄을 ‘헌정을 중단시킨 민주주의 훼손 행위’가 아니라 ‘극단적인 진영 대결의 연장선’으로 이해했다. “계엄 자체는 잘못됐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민주당이 원인을 제공했다며 계엄을 합리화했다.
대학생인 20대 남성 B씨는 지난 2월 20일 서울 서초동과 안국역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전에서 상경했다. 그는 “계엄 당일에는 왜 계엄을 터뜨려. 미쳤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담화문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거기 밝혀진 대로 거대 야당의 탄핵 남발, 예산 삭감, 무분별한 법안 발의가 있었다. 헌법재판소 변론도 쭉 봤는데 거대 야당의 폭주 때문에 계엄을 저질렀다는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본다”고 했다.
탄핵 남발, 예산 삭감, 법안 발의는 정도를 지나쳤을지언정 헌정 질서 안에서 이뤄진 행위다. 선을 훌쩍 넘어버린 계엄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극단적 진영 대결의 자장 속에서 옳고 그름이라는 절대적 기준은 설 자리가 없다. 모든 건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저쪽 진영이라는 상대방이 있고, 우리 편의 대응과 보복, 승리만 있을 뿐이다. ‘계엄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을 때 자주 관찰되는 것은 ‘정당하다’ 혹은 ‘부당하다’는 답이 아닌 상대편에 대한 악마화였다.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는 ‘윤석열 수호’라는 본질보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때때로 더 큰 파도가 돼 넘실거리기도 했다.
지금의 극우세력은 이쪽에 대한 지지보다 저쪽에 대한 반감에 기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20대 남성 C씨는 방학 기간에 광주 부모님 댁에 머물다 지난 2월 15일 광주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날 집회에 ‘민주당은 탄핵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광주 청년이 드리는 호소문’이라고 쓴 대자보를 들고나왔다. 그는 “윤 대통령을 뽑긴 했지만 늘 지지하진 않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게 “(계엄 이외의)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며 계엄은 잘못됐다고 봤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가족들도 모르게 대자보를 써서 광장에 나온 이유는 반감 때문이다. “이재명이나 민주당이 (집권하게) 될까 하는 위기감에 집회에 나갔다”고 했다.
서울대 탄핵 반대 시국선언 현장에서 만난 70대 여성 D씨도 다르지 않다. 경남 출신으로 30여 년 전 서울에 뿌리를 내린 그는 역대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동영,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 정치에는 관심이 크지 않았지만, 주로 “불쌍한 생각이 드는 인물”에 표를 줬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서민이고 얼마나 좋냐. 말하는 게 합당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등 구설을 접하고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남국 전 민주당 의원의 코인 투자, 같은 당 양문석 의원 딸의 새마을금고 편법 대출 등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집회에 나가는 이유에 대해 “이재명은 절대 아니다, 그런 마음이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어 “집회 가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 욕할 수 있어서 좋다. ‘이재명 내려와 이 XX야.’ 어디 가서 호소할 데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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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의 결합
이 반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민주당에 대한 악감정에 기반한 이들의 발화는 일부의 사실과 가짜뉴스, 느낌과 망상이 바탕이 된 것이어서 합리적인 비판이라 보기 어렵다. 이들이 민주당에 대해 먼저 악감정을 갖고, 사후적으로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악감정을 갖게 된 계기를 살펴보는 것은 극우의 세력화라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가늠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이들이 민주당에 대해 반감을 형성한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민주당 외부의 요인에 의해 반감이 형성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 내부 요인에 의한 경우다. 마지막은 독자적인 경로로 볼 만큼 집단 내 동질성이 있는 2030 남성들의 경우다.
가장 영향력이 컸던 외부 요인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극우의 세력화에 가장 책임이 큰 개인이 있다면 윤 대통령일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탄핵을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일곱 가지로 추려진다. ①민주당의 공직자 탄핵 남발 ②민주당의 입법 남발 ③민주당의 예산 삭감 ④민주당의 안보 위협 ⑤부정선거 ⑥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 ⑦계엄은 국가 위기를 알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이른바 ‘계몽령’ 등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주장은 이중 일부를 취하고 일부는 버렸지만 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일곱 가지 방어논리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후 처음으로 내놓은 지난해 12월 12일 담화에 빠짐없이 담겨 있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정부 수반이라는 영향력을 활용해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어느 유튜버보다 극우세력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인터뷰에 응한 5명의 2030 남성들은 계엄에 대해 이야기하며 하나같이 “‘대통령께서 왜 계엄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들은 계엄의 충격보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계엄 선포의 이유를 헤아리는 데 집중했고, 그 바탕에는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 아무 이유 없이 계엄을 선포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대통령 권위에 대한 인정이 깔려 있었다. 헌재와 법원을 포함해 국가기관을 “못 믿겠다”고 평가한 20대 E씨는 ‘믿을 만한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통령이 하는 말 정도는 적어도 믿겠다”고 했다.
계엄과 탄핵 반대를 정당화하는 데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여도 적지 않았지만, 전광훈 목사로 대표되는 특정 기독교 세력의 영향도 컸다. 광장에서는 종교적 믿음과 정치적 신념이 결합된 이들이 적잖이 발견됐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취업준비 중인 30대 남성 F씨는 2019년 광화문광장에서 전광훈 목사의 설교를 처음 접한 이래, 힘이 닿는 대로 광장에서 “애국 운동”을 하고 있다. 그가 전한 전광훈 목사의 말은 이승만 대통령이 구한말 투옥생활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문으로 죽을 지경에 놓인 이승만 대통령이 ‘살려주시면 대한민국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늘에 기도를 드렸고, 그 응답으로 살아난 뒤 기독교 국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4가지 건국이념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신실하게 기독교를 믿는 것도,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던 윤 대통령을 지키는 것도 모두 ‘애국 운동’이다. 이 세계관에서 유물론에 기반한 “공산주의는 사탄”이고, “민주당은 좌파”이며 “좌파들은 공산주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70대 남성 G씨는 전광훈 목사의 설교를 듣고 “헛똑똑이, 쭉정이였다가 알곡으로 새로 태어났다”고 했다. 과거 대선에서 그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후보에 투표했는데 2019년 개천절 집회에 처음 참석한 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당시 광화문 집회는 전례 없는 대규모로 열렸다. G씨는 “이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전광훈의 실력이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움직임이다, 이게 느껴지더라”라고 했다.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 전 목사의 설교를 두고 한 집회 참가자는 “(설교 내용이) 철이 자석에 달라붙듯이 딱 들어온다”고 했다. 어쩌면 전 목사의 설교에 담긴 구원의 메시지가 개개인의 취약성을 파고든 것일 수도 있다. 70대 G씨는 가정을 꾸린 적이 없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산다. 30대 F씨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 취업을 준비 중인데 수년째 낙방했다. 그는 “서른 살 넘으니 진짜 잘못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면서도 “3월 1일에 광화문에 3000만명을 모으는 것까지만 하고 일을 알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가 믿는 것은 “얼마나 예수님을 위해 살았는지에 따라 상을 주신다”는 ‘새 예루살렘의 상금’이다. 새 예루살렘은 종말이 임박한 순간에 내려지는 구원을 상징한다. 그는 “설교에서 듣기로는 대한민국에서 상금이 가장 많은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애국 운동을 하면 상금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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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개천절 집회는 보수 집회의 외연을 크게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종전까지는 ‘태극기 부대’가 주력이었지만, 이 집회를 계기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층 인터뷰 대상자를 섭외하기 위해 진행된 노년층 사전인터뷰에서도 상당수 응답자가 2019년 무렵부터 광화문 집회에 합류했다고 답했다. 2019년은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숨을 죽이던 보수세력이 본격적으로 재결집을 시작한 해였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종북’ 구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개천절 집회 직전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정부의 개혁 대상이었던 검찰이 현직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면서 진영 갈등이 극에 달했다. 서초동의 조국 수호 집회에 대한 맞불로 광화문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민주당을 공격할 때 동원하는 논거는 2019년 전후의 사건들에 기반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 ‘종북’이라는 딱지는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뿐 아니라 음모론과도 쉽게 섞인다.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던 G씨는 “대통령 돼가지고 북한 가서 김정은 만나서 백두산에서 만세도 부르고 그때 돈을 얼마나 갖다줬겠냐”고 했다. A씨 역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들어 “이재명이도 퍼주고, 이재명 대통령 되면 중국하고 북한하고 같이 가는 거다”라고 했다. 나름의 합리성을 지닌 비판도 있다. 광주가 고향인 대학생 C씨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에 투표했지만, 이후에는 줄곧 국민의힘에 투표했다.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 진보는 선이고, 보수는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여러 사건을 거치며 “둘 다 피차 일반이다”라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가 꼽는 사건들은 조국 사태,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횡령 의혹 사건 등이다. 그러나 조 전 장관에 비판적인 사람이 모두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것은 결정적인 이유라기보다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해 보인다. 다만 그 구실을 민주당이 제공했다는 점을 성찰할 필요는 있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선악 구도의 진영 정치에서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증오의 이유를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인지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비판도 있지만, 감정이나 가짜뉴스, 막연한 두려움에 기댄 비판이 많다. 이들은 계엄과 그 이후 혼란상에 대한 공포보다 이재명 대표의 집권에 대한 공포를 더 크게 느낀다. 이들이 진영 대결이라는 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진영 간 싸움이 선악 구도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이재명만 우리나라에 없으면 조금 제대로 돌아갈 것 같다”(60대 여성 A씨), “대통령이 되면 절대 안 돼. 무섭다”(70대 여성 D씨) 등의 인식에는 토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상대방은 타도 대상일 뿐이다. 선을 넘어버린 일부 시민들만의 문제일까. 최근 책을 내며 정치 활동을 재개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이 대표다. (중략) 이재명 정권 탄생을 막기 위해 계엄의 바다를 건너자”고 했다. 진영 간 선악 구도 대결을 고착시킨 건 기성 정치권인데, 정치인들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일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증오심에 올라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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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화된 개인이 광장으로
이번 탄핵 반대 집회는 종전의 집회와 달리 청년 세대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친구들과 함께, 연인과 함께, 유아차를 밀고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많았다. 성비를 따져 보면 남성의 비중이 높았지만, 여성 참가자의 수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세대 심층 인터뷰 대상자 5명 전원이 모두 남성인 것은 ‘2030 남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를 가져서가 아니라 여성 참가자들을 인터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에게는 일정한 공통점이 발견됐다. 이들은 계엄 이전부터 자신들의 정치 성향을 ‘보수’라고 생각했다. 지난 대선에서 투표권이 있던 이들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이들은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직접 찾아보는 정치 고관여층으로, 이론적으로 무장돼 있었다. 이들에게도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노년층과는 달리 사회·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보수에 가까웠다. 예컨대 인터뷰 대상자 대다수가 경제정책에 있어 성장을 지향하고, 복지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고 봤다. 선호하는 복지정책의 기조는 선별복지다. 대학생 B씨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편한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일할 수 있도록 챙겨주는 건 괜찮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F씨도 “일할 의지가 있는데 일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 지원해야지, 모든 사람한테 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에게 복지는 약자가 누려 마땅한 사회적 권리가 아니라 사회가 주는 특혜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여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대한 관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B씨는“약자에게 동등한 권리를 챙겨주는 건 찬성한다. 그런데 일반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역차별로 작용한다면, 그들에게 주는 권리를 제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들은 철저히 개인화돼 있고, 손해에 민감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엄격하게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 F씨는 전장연에 대해 “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건 맞지만, 장애를 권리로 내세워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수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그는 스스로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는 열심히 해야 결과가 나오는 거 아니냐.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데 노력을 안 해서 이런 것 같다. 제가 능력이 없다고 무조건 배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특권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분자화된 개인들에게 다른 정치적 선택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들과 정치 진영의 끈끈한 결합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 고르게 관찰되는 것은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한 이들의 긍정적 반응이다. 대학 입학을 앞둔 20대 E씨에게 여가부 폐지는 숙원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과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진지하게 얘기한 건 아니고 농담처럼 하는 얘기였다. 여가부를 폐지한다고 얘기하는 게 (교실 내) 주류였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놨을 때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주변 친구들도 그랬다. 폐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는 20대 H씨의 지난 대선 투표에는 여가부 폐지 공약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을 다 싸잡아서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는 건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반감도 (지난 대선 투표에)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했다. 이 반감은 이쪽을 지지해야 할 이유로 기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쪽을 저지해야 할 이유로도 쓰인다. B씨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페미니즘이 강화된다고 본다. 그것 때문에 (탄핵에)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여가부가 강화되고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질 것 같다”고 했다.
젠더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혐오의 언사를 공론장에서 공공연히 발화한 정치권의 책임이 적지 않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시절 전장연 시위를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 공격하며 여론지형에서 전장연을 고립시키는 데 앞장섰다. 정치 지도자가 태도로나마 약자에게 관용을 보이던 불문율을 깨트렸고, 정치로 풀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젠더 갈등에서도 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대학생 C씨는 “이준석 대표로부터 시작됐던 반페미니즘 정책이 젠더갈등을 악화시켰다고 본다. 2030 여성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되게 하는 역할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정치 고관여층이었지만, 현실 세계에서 타인과 정치 관련 의견을 나누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눌 주변인이 있는 경우도 소수에 그쳤고, 채널도 다양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나 페미니스트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본 경험도 없었다. C씨는 “정치 이야기는 고향의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조금씩 한다. 대학에서는 종교나 정치 얘기는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다. 시사나 정치에 대한 얘기는 피했던 것 같다”고 했다. 연결과 접촉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기 안산의 제조업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20대 H씨는 반중국, 반민주노총, 반페미니즘 등 가치관 대부분에서 또래와 유사한 입장을 보였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는 “안산 공장에서 일할 때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은 됐다. 먼 나라까지 와서 적응하고 일하는 것도 힘들 텐데, 그분들에 대해 악감정은 없다”고 했다.
광주 시민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한 A씨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론이 나면 다시 광주에 방문하기로 했다. 탄핵이 인용되면 광주 시민들이, 탄핵이 기각되면 A씨가 밥을 사기로 했다. 그는 “‘광주 간다’니까 식구들이 ‘죽으려고 가냐’고 했는데 친구 됐다. 이념을 떠나서”라고 했다. 우리는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