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의과대학들의 수시모집 최초합격자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의료계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이후에도 ‘신입생 모집 중단’ 요구를 이어가며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 문구가 포함되며 의료계는 정부 비판 여론에 힘 입어 다시 동력을 얻는 모양새다. 다만 교육부는 여전히 “수능 성적이 통지되고 합격자가 발표되는 등 대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2025학년도 대입 모집인원 중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대학본부와 ‘신입생 모집 인원’ 논의를 위한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 교수들은 이번주와 다음주 총장, 입학처, 교무처 관계자 등과 면담이 예정돼 있거나 일정을 조율 중이다. 수도권 의대 교수협의회 회장 A 씨는 “학교별로 학장 면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학교도 다음주 면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침묵 시위’도 재개되는 분위기다. 부산대 의대 학생회와 교수협의회는 지난 10일 오후 대학본부와의 면담을 앞두고 대학본부 1층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최근 법원이 대학의 ‘자율성’을 인정한 점도 의료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최근 고등법원이 연세대의 항고를 인용하며 대학의 자율성을 상당히 많이 보장해줬다. 입학 정원 관련해서도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교육이 가능한지를 포함해 여러 부분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사립학교의 합격 및 불합격 판정 또는 입학 자격, 선발 방법 등은 해당 교육 기관이 교육 목적 달성을 위해 인격, 자질, 학력, 지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할 수 있는 재량행위”라며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의 효력을 정지한 1심 결정을 뒤집고 연세대의 항고를 인용했다.
의료계는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고, 정시 인원도 감축 또는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별 모집요강에 따르면 지난달 7일 건양대 의대(수능최저학력기준 미적용 모집단위)를 시작으로 13일까지 수시 최초합격자가 발표된다. 16~18일 등록 기간 이후 27일까지 추가합격자 발표 및 등록이 이뤄지고, 31일부터는 정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의료계로서는 정시 접수 시작일인 31일 이전에 총장들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의료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입시요강에 언급돼 있는 ‘수정 가능성’이다. 입시요강을 살펴보면 서울의 한 의대 입시요강에는 “학과개편 및 정원 조정으로 모집단위 신설, 통합, 분리, 명칭변경, 전형별 모집인원 변경 등이 있을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한 국립대 의대 입시요강에는 “교육부의 입학정원 조정 결과 및 학칙개정, 감염병, 천재지변 등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며, 변경될 경우 우리 대학교 입학정보홈페이지를 통해 변경사항을 공지할 예정이니 원서 접수 전에 반드시 모집요강을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공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총장들은 꿈쩍하지 않고 있다. 최근 전의교협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등 교수단체는 의대총장협의회(의총협)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의교협 측은 “의총협에서 ‘미팅을 하기 어렵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현재 논의 진척은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의비도 9일 성명을 통해 의총협 측에 “‘의총협-의대학장협회-의대교수단체 TF’를 구성하고 의대교수들과 함께 즉각 윤석열표 의대증원을 리셋하기 위한 행동에 돌입하라. 그동안 빼앗겼던 대학 자율권을 되찾아 합법적으로 행사하기 바란다”고 했지만 의총협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전의비 측은 “수시 합격자 발표가 있는 동안은 계속 요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당국도 모집인원 중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계엄령 직후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2025학년도 의대 합격자 발표 전에 의대 모집 중단을 포함한 실질적 정원 감축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힌 데 대해 교육부는 대변인실 명의로 “수능 성적이 통지되고 합격자가 발표되는 등 대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2025학년도 대입 모집인원 중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입장을 냈다.
최근에는 전국의대학부모연합(전의학연)도 대학 총장들에 내년도 의대 정원 모집을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손해배상 청구의 소까지 거론했다. 전의학연은 9일 성명을 내고 “교육부는 의대 정원 배정 근거가 각 대학교 총장이 발송한 증원 요청 공문에 있음을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1년 동안 1만 8000여 명의 의대생들이 받은 불이익과 2025학년도 의대교육 파행으로 입게 될 예상 피해에 대한 책임은 각 대학 총장에게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며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모집을 즉시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전의학연은 1년 동안 학생들이 받은 불이익에 대해 학교 상대로 소송 등 책임을 묻겠다고 결의했다. 지금이라도 각 대학이 전의학연의 요구사항을 수락한다면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의협 비대위는 ‘정부의 의료농단 저지 및 의료 정상화를 위한 의협 비대위 제4차 회의 관련 브리핑문’을 통해 “모든 의사, 의료계 전 직역을 대표하는 의협 비대위는 총장님들께서 교육적 원칙으로 돌아가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중단해 주시길 요청드린다. 총장님들께서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농단·의료농단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전날 ‘교육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고등교육기관의 의학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부에 내년 12월 31일까지 존속하는 한시 조직으로 의대교육지원관 및 의대교육기반과를 각각 신설하는 내용이다. 인력 5명(고위공무원단 1명, 4급 1명, 5급 2명, 6급 1명)이 배정될 예정이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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