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는 한복…
MZ도 반할 힙한 생활복, 전통 악세서리로 부활하다
30년 된 낡은 한복, 여름용 A라인 민소매 원피스로…
황혜진씨는 30년 전 결혼식에서 입은 진분홍색 한복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뭘 잘 버리는 성격도 아니지만 결혼이라는 순간을 함께한 의미 있는 한복이라 더는 입지 않으면서도 쉽게 처분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복을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의 옷으로 부활시키는 ‘한복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한복 자체를 10분의 1로 축소한 미니어처도 함께 제작한다. 빛이 바래가는 추억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기회. 황씨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한복을 기증했다.
‘한복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맡은 다나픽코리아 김수경 대표는 황씨의 본견 소재 한복 해체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중으로 된 스란치마의 진분홍 겉감을 거둬내니 예쁜 베이비 핑크색 안감이 드러났다.
“정말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한 옷이란 걸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30년이나 됐으니 옷감이 상하기도 했어요. 낡고 바랜 부분은 제거하고 온전한 부분만 살려서 옷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사랑의 증표였던 한복을 다시 살리는 데에 보람이 있죠.”
은은한 분홍빛의 안감은 민소매 상의로 변신했다. 남은 천은 포인트가 되는 허리끈 장식으로 활용됐다. 넓은 한복 치마폭은 움직이기 좋도록 적당한 폭으로 줄였다. 여기서 나온 자투리 천으로는 한복 미니어처를 만들어 새색시 시절의 추억을 박제했다.
저고리는 동정과 소맷귀를 수선해 현대식 볼레로로 재탄생했다.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활동성은 더하면서도 한복이 가진 특유의 매력을 잃지 않도록 손보는 것이 포인트다. 이렇게 30년 묵은 한복은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여름용 A라인 민소매 원피스와 산뜻한 볼레로, 두 벌로 재탄생했다.
친환경 기업 ‘서광알미늄 브래나쿡’의 대표이기도 한 황씨는 “내 낡은 한복이 이렇게 다시 태어날 줄 생각지도 못했다”며 “과거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미니어처까지 만들어주어 더욱 감동적”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한복과 지속가능한 패션.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교집합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김수경 대표, 그는 “한복은 특별한 날의 의상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일상에서 친숙하게 입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형태로 재탄생하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올해부터 더는 입지 않지만 추억을 기억하고 싶은 한복을 기증받아 한 달에 한 작품씩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사이클링 작품들은 전시회와 패션쇼를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고이 모셔둔 한복을 프로젝트에 기증하고 싶다면 ‘다나픽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기증 희망 한복 사진과 사연을 공유하면 된다.
“폐한복 한 벌, 가방 3~4개 만들 수 있어요”
폐한복으로 가방, 댕기, 키링, 헤어밴드 같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생활 속에서 한복의 존재감을 지키려는 이도 있다. 이민지 작가는 계명대 창업 동아리팀으로 출발해 한복 업사이클링 공방 ‘호롱잡화점’을 운영 중이다. ‘우리의 것을 지키키 위한 작은 목소리’가 호롱잡화점의 지향점이다.
“한복은 의류 수거함에 넣을 수 없고 처리하려면 일반쓰레기(종량제 봉투)로 버려야 해요. 기본적으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의류이기 때문이에요. 버려지는 한복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법을 찾아보다 생활 속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호롱잡화점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품목은 댕기 키링이다. 전통 아이템을 부담 없이 지닐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자신의 한복을 가져와 그의 강의를 들으며 업사이클링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복의 오염도나 무늬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벌로 가방은 3~4개, 댕기는 10~15개가량 만들 수 있다.
그가 활동하는 지역, 대구는 1940년대부터 ‘섬유의 도시’였다. 과거 성행해던 섬유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60대 재봉사들의 일감이 줄어들었다. 이민지 작가는 시니어 재봉사 일자리 지원 차원에서도 전통 소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는 전통 의상집, 장신구집 같은 고증을 담은 서적을 보며 현대 악세서리 디자인 영감을 얻고 있다.
이민지 작가는 “전통과 환경, 이 둘의 공통점은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버려질 뻔한 한복을 자르고 깁고 덧대어 기어코 새것으로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