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씨는 최근 보고서 내용이 눈에 잘 안 들어와 같은 페이지만 여러 번 읽기를 반복하기 일쑤다. 업무 진도가 안 나가다 보니 마감이 늦어 급기야 상사의 호출까지 받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멍한’ 순간이 반복되면서 출근조차 힘들어졌다. 김씨는 “어느 순간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로 생각이 느려지고 무기력감이 심해졌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오모씨는 날씨가 추워지면 학업 의욕이 급격히 떨어지고 수면 시간도 늘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엔 그냥 ‘가을 탄다’고만 생각했지만 11~12월이 될수록 증상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증세는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로 유학을 가면서 더욱 심해졌다. 오씨는 “그러잖아도 우울한 날씨에 외출도 힘들고 학업마저 중단해야 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상은 겨울철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인 ‘계절성 우울증’이다.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과 겨울이 되면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우울 증세를 보이는 질환이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겨울만 되면 수면 시간이 급격히 늘고 무기력함과 의욕 저하 증상이 심해지는 증상”이라며 “정신 반응 속도 또한 느려지면서 의사 결정이 어려워지고 업무와 학업 등 일상생활도 큰 지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겨울만 되면 우울감이 심해지는 건 무엇보다 일조량이 줄기 때문이다. 일조량이 줄면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는 증가하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는 감소한다. 겨울철 극야 현상이 발생하는 북반구 고위도 지역 국가인 스웨덴·핀란드 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울증 발생률 상위권을 기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에서도 매년 11월과 12월에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여기에 우울증 가족력이 있거나 호르몬 변화에 예민한 경우 계절성 우울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렇다 보니 계절성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겨울나기가 두렵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치료 못지않게 일상생활에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낮에 틈틈이 사무실이나 집 밖으로 나가 햇빛을 충분히 쐬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광치료법이 계절성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각에 기상하는 습관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겨울철 혈관이 수축하고 근육이 굳으면서 생기는 관절염과 뇌졸중 등의 신체 질환을 관리하는 것도 필수다. 특히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 만성 염증성 질환은 겨울철 우울감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 쉽다. 전 교수는 “뇌졸중의 경우 뇌혈관이 막혀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에 영향을 주게 되면 우울증은 물론 치매 초기 증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