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법 논란, 본질은 경제의 자유

2025-02-19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얼마 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체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데 대해선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도 알고 있었던 거다. 문 정부의 실정(失政)이 윤석열 후보의 집권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의 인식이 실정의 뿌리까지 가 닿았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이가 지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패배의 원인으로 경제 실정을 꼽는다. 대표적인 것이 ‘주 52시간제’와 소득주도성장(소주성), 그리고 부동산값 폭등이었다.

경직된 주 52시간제 경쟁력 훼손

중국·대만 등 근로시간 유연 적용

반도체 R&D, 예외 인정해 줘야

셋의 공통점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경제의 자유를 억압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는 일하고 싶어도, 일을 시키고 싶어도, 일감이 있어도 주 52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많은 공장이 가동을 줄이거나 동남아 등지로 떠나야 했다. 소주성의 핵심인 ‘최저임금 1만원’은 임금을 실제 형편 이상으로 강제했다. 급등한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사업자들은 직원을 내보내거나 문을 닫았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을(乙)’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1만원 정책 모두 근로자 복지를 내걸었다. 그러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적용은 외형적 평등 달성에 기여했을지 몰라도 고용과 성장을 희생시켰다. 진보 정책의 전형적 실패 사례라는 비판이 지나치지 않다.

문 정부의 임대차 3법은 계약갱신청구권(최대 4년)과 전·월세 상한제(5%)를 강제했다. 시장에서 이뤄지는 계약과 가격 결정에 정부가 개입한 것이었다. 주택 공급과 수요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고, ‘영끌’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중산층·서민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나쁜 정책은 상처를 오래 남긴다. 기업인들은 문 정부 경제정책의 후유증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주 52시간제 등이 대못처럼 박혀 한국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주력 산업인 반도체도 주 52시간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밤을 새워서라도 해결책 찾는 것을 당연시하던 기업 문화가 달라졌다. 저녁이면 연구소 불이 꺼졌고, 급한 일도 퇴근 시간이면 멈춰야 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후 7년.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중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의 아성이던 메모리 반도체에서 중국이 턱밑까지 뒤쫓아왔고, TSMC가 이끄는 대만 파운드리와의 격차는 벌어졌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노력은 무서웠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중국은 인구 1000만 명의 우한시를 봉쇄하면서도 우한의 반도체 기업 YMTC 공장은 계속 돌리도록 했다.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 업체 CXMT엔 국가 자본을 투입해 작심하고 키웠다. 이렇게 성장한 YMTC와 CXMT가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잠식하고 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1980년대와 90년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몰아냈던 것과 비슷한 일이 한국에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한국 반도체가 중국에 쫓기고 대만에 뒤지게 된 것이 비탄력적인 주 52시간 규제 한 가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두 나라 모두 국가 차원의 총력 지원에서 한국을 능가한다. 그러나 ‘996(주 6일, 오전 9시~오후 9시) 근무’가 일상화된 중국이나 24시간 연구개발팀을 돌릴 수 있는 대만이 R&D 집중력에서 한국보다 우위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반도체특별법의 ‘R&D 분야 주 52시간제 예외’는 반도체 업계의 숙원이다. 중국·대만·미국과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R&D에 몰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절규가 담겨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대로 특별법은 국회에서 또다시 멈췄다. 노동계는 장시간 노동을 우려하지만, 고임금 연구 인력을 혹사시키겠느냐는 기업의 반문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기업의 자유는 이번에도 봉쇄될 것인가. 역사적으로 규제가 기업의 자유를 옥죄면 산업은 쇠락했다. 한국 반도체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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