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가 봉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가연동 소득세’ 논의에 불을 지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소득세 과세표준(과표)을 올려 세금 부담을 줄여주자는 얘기는 2008년부터 나온 해묵은 논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주제다. 기획재정부는 이번에도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고, 감면한 세수를 어디서 채울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물가연동 소득세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과세 표준이나 면세자 비중을 함께 조정하지 않으면 감세 포퓰리즘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법인세가 줄어들면서 소득세와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게 발단이었다. 지난해 근로소득세 수입은 전년보다 1조9000억원 증가해 61조원으로 늘어난 반면, 법인세수는 62조5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약 18조원 감소했다. 전체 세수에서 월급쟁이가 내는 근로소득세 비중이 기업이 내는 법인세 만큼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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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지난 19일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안 올라도 누진제에 따라 세금이 계속 늘어난다”며 근로소득세 감세안을 들고 나왔다. 20일 더불어민주당의 임광현 의원도 16년간 그대로인 기본공제 금액을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현실화하고,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통한 실질세 부담을 낮추자는 의견을 냈다. 이재명 대표 직속 기구인 월급방위대(위원장 한정애)는 다음달 초 구체적인 소득세 개편안을 도출하기 위한 집담회를 열기로 했다.
실제 멈춰 있는 과표는 ‘소리 없는 증세’라 불린다. 매년 물가만큼 임금은 오르는데 과표 기준은 18년째 그대로다. 물가 상승분을 덜어낸 실질 임금이 제자리라도 이전보다 훨씬 높은 세금(세율)을 부담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정견인(財政牽引·fiscal drag)’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물가 상승이 납세자를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견인’해 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현행 소득세 과표가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재부는 2008년부터 유지하던 소득세 과표 구간을 15년 만인 2023년에야 수정했다. ‘1200만원 이하’ 구간을 ‘1400만원 이하’로, ‘4600만원 이하’를 ‘5000만원 이하’로 각각 올렸다. 하지만 과표 ‘8800만원 초과’ 구간은 바꾸지 않아, 2008년부터 17년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2개국이 이미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소비자물가지수(CPI)의 누적 증가율을 반영한 ‘생계비지수’를 기준으로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시행하고, 과표뿐 아니라 각종 공제 항목에도 물가를 연동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CPI 누적 증가율이 5% 이상일 때 소득세를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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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물가연동 소득세 도입은 2008년부터 매해 논의되어 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만큼 논란도 많다. 당장 재정당국인 기재부가 반기지 않는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물가연동을 어디까지 할 건지부터 문제”라며 “과표만 할 건지, 인적 공제도 물가에 연동할 건지, 자영업자들이 내는 종합소득세는 놔둘 건지 등 조세의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는 복잡한 문제라 단시간에 어렵다”고 토로했다.
제도의 ‘역진성(소득이 적은 사람의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늘어나는 것)’도 딜레마다. 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기준을 그대로 두면 자연스럽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면서 “하지만 물가 연동제를 도입하면 고소득자 위주로 세수 감소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줄어드는 세수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과표를 바꾸면 적어도 10조원 이상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예측된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결국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출을 줄이거나 다른 세원을 발굴해야 하는데, 어느 하나 녹록지 않다”며 “이미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고 부가가치세나 유류세 등을 올리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세출을 줄이는 것 역시 재정 투입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높은 면세자 비율 역시 걸림돌이다. 한국 면세자 비율은 33%(2023년 기준)로, 10명 중 3명꼴로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물가연동제를 도입해 과표 구간을 높일 경우 이 비율이 더 오를 수 있다.
이에 국내 세금 전문가들은 물가연동 소득세에 동의하지만, 전반적인 소득세 체계 개편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감세 포퓰리즘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한국 실효세율은 OECD 국가 대비 상당히 낮은 편”이라며 “과표 체계와 과도한 공제 체계도 함께 고쳐야지 이걸 두고 국민의 불만만 부채질해 감세만 해주는 물가연동 소득세만 도입한다면 인기영합주의적인 정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세금을 항상 바꾸기 힘든 만큼 자동으로 물가에 연동하는 건 합리적인 방안”이라면서도 “물가 연동제를 추진하되 면세자 비율을 줄이기 위해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고 소득세를 감면받더라도 최소한의 세금은 내도록 하는 등 전반적인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