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자원봉사는 ‘인싸’ 되는 지름길

2024-09-29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이 중 1%도 안 되는 최소 1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고 마음먹어온 게 20년 되었다. 돈을 기부하는 건 쉬워도 남을 위해 시간을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일이 결국 나에게 도움된다고 깨달은 때가 있다.

구글코리아에서 12년 정도 근무한 후 5년 전 구글 미국 본사 디렉터로 발령이 나 실리콘밸리로 이사했다. 시차와 생활 변화, 무엇보다 언어 걱정으로 첫 6개월 동안 밤잠이 안 왔다. 내가 일하는 커뮤니케이션 부서는 언어 능력이 가장 중요했다. 본사 커뮤니케이션팀에는 영어 원어민 중에서도 말발과 글발 있는 친구들이 몰려 있던 터였다. 하버드 영문과 졸업생들과 전직 기자들 출신들은 얼마나 많았던지. 이런 친구들을 팀원으로 두는 입장인지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영어에 익숙해져야겠다는 마음에 영어 콘텐트를 밤새 틀어놓고 듣다가 새벽녘에 겨우 선잠이 들곤 했다. 또 내가 사는 동네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아침저녁 조깅을 하는가 하면 동네의 각종 커뮤니티 활동에도 나가 보았지만, 남의 동네에 얹혀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봉사는 ‘낯섦’을 이겨내는 방법

소속감과 동질감 얻는 데 도움

결국은 남 아닌 나를 위한 시간

어느 날 현지에 정착한 지 5년 넘은 한국인 구글 동료에게 물었다. “도대체 언제 ‘아싸’(아웃사이더) 느낌이 없어질까요? 언제부터 ‘인싸’(인사이더) 느낌이 들까요?” 그 동료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아싸’ 느낌”이라며 “‘인싸’ 되는 거 포기하세요”라고 답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이곳이 내 동네라는 생각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한국에서 해왔던 ‘1주일에 최소한 1시간 남을 위해 써보자’는 다짐이었다. 바로 여기저기 웹사이트를 찾아보고 지역 내 자원봉사할 곳을 찾았다. 우선 구글 본사가 있는 마운틴뷰라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식 건물인 박물관의 해설사를 지원했다. 가까운 경찰서에서 지문을 찍고, 범죄 기록이 없는지 증명하고,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바인더 자료에 실린 박물관 관련 내용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하루 4회 해설을 맡는 자원봉사를 시작했지만, 바로 코로나 사태를 맞아 박물관이 폐쇄됐다.

다시 알아본 곳이 시니어센터 배식소. 60세 이상 지역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이었다. 코로나로 자원봉사자는 줄었고, 무료 식사를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은 더 많아졌다. 매일 점심때 나가서 200인분의 식사를 배식했다. 코로나가 심했을 때는 마스크를 이중 삼중으로 쓰고 점심을 개별포장해 전달하기도 했다. 4년 넘게 배식 봉사를 하면서 어르신은 물론 자원봉사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도 알아가게 됐다. 6개월 정도 지나면서 내 동네라는 느낌이 든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웃들이 뭘 이야기하고 관심 있는지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속감을 느끼려면 작은 것이라도 공동체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한 달 전 5년의 실리콘밸리 생활을 일단 마무리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10배속으로 돌아가는 듯한 한국 사회로 돌아와 받은 첫 느낌은 나 자신이 ‘어리바리’해졌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밤잠이 안 왔다. 매일 밤 영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사상 가장 더웠다는 늦여름을 보냈다. 미국 땅에서처럼 남의 동네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온 서울이지만, 처음 살아보는 동네라서 낯섦이 더 컸던 것 같다.

다시 불현듯 난 생각. ‘그래, 낯선 곳이라고 느껴진다면 그 지역 봉사 활동을 해보자.’ 이 지역이 내 곳이라고 재정의할 주체는 결국 나 자신 아닌가. 그래서 동네에 있는 올림픽 공원을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또 새로 다니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아름다운 가게’ 1일 봉사를 바로 신청하는 한편, 청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방문하기도 한다.

주민등록 주소를 옮기거나 지역 선거에 참여한다고 해서 소속감과 동질감이 생기지 않는다. 지역사회를 위해 무언가 뜻 있는 일을 할 때 소속감이 솟지 않을까. 꼭 무료 봉사활동일 필요는 없다. 매일 지나다니는 방이시장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주말에 한두 시간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됐다. 추석 연휴 기간 동네 액세서리 판매점이나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에도 지원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계속 시도해보고 싶다. 꼭 돈을 번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는 사회에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함께 사는 세상’을 느끼는 지름길이다.

정김경숙 한미그룹 브랜드본부 부사장·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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