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어도 할 게 없다…대한민국 노인들의 현주소

2024-10-05

65세 이상 인구 가파르게 느는 한국, 2050년엔 40%가 노인

‘무쓸모 존재’ 낙인, 교통 사고도 고령자가 내면 비난·혐오

복지 ‘기본’ 있지만 ‘역할’ 주어지지 않아…일자리 합의 필요

한국 사회를 덮친 위기가 공중의 불안을 부추길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이들이 있다.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적 안전망의 한계가 서서히 드러날 때, 그리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대형 인명사고가 났을 때에도 이들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됐다. 노인, 나이 든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대한민국에서 노인 비중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2022년 인구의 17.4%(901만8000명)였던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 7월 기준 19.51%(1000만62명)로 늘었다. 불과 2년 사이에 100만명 가까이 증가하면서, 전체 노인 인구가 서울시 인구(935만명)를 제쳤다. 전망은 더욱 가파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5년 20.3%, 2036년 30.9%, 2050년에는 4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추세가 유지되면 25년 뒤 한국에선 길 가다 만나는 사람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뜻이다.

노인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면 대한민국은 노인들이 살기 편안한 사회가 될까. 현실은 거리가 있다. 노인 인구 비중이 느는 동안 한편에선 ‘노인혐오’ 논란이 커졌다. 2020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표적이다.

노인들은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집단인 동시에 혐오와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집단이었다. 노인들은 마스크 착용에 부주의하다는 이유로, QR코드 출입에 서툴다는 이유로, 백신 접종을 두려워하고 기피한다는 이유로 눈총을 받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립된 노인들이 폭력과 방임 등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당한다는 보고도 쏟아졌다. 재난 상황만이 아니다. 국민연금 재원이 고갈된다는 우려, 지하철이 적자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저 노인들이 현재 ‘누리는’ 제도가 시비의 대상이 됐다.

지난 7월 1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교통사고’는 노인을 향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재확인시켜주는 계기였다. 가해 운전자가 68세로 고령이었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노인의 운전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경찰이 신체 및 인지 능력 저하로 사고 위험이 큰 운전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이어졌다.

경찰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했지만, 고령 운전자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온라인에는 비난과 혐오를 담은 표현들이 범람한다. ‘고령 운전자’라는 말은 어느새 연령으로 자격 조건을 선 긋는 혐오 표현처럼 쓰이게 됐다. ‘개개인의 신체 능력에 따른 차이’를 따져보자는 합리적인 목소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다.

‘혐오’보다 더 힘든 건 “할 게 없다”는 무력감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9월1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는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공원 안의 노인들은 가만히 앉아 부채질을 하거나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공원 바깥 낙원상가 인근에선 장기판이 벌어졌고,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보였다. 노인 운전자 교통사고 사건 등을 계기로 표출된 노인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강성구씨(68)는 매주 서너 차례 탑골공원에 온다고 했다. ‘고령 운전자는 운전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운전을 아주 못하게 할 수 있겠나”라며 “사회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도 많고 노인들이 많이 하는 택시 운전 등은 일손이 늘 부족한데 노인에게 운전을 못하게 하면 누가 이 일을 하겠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정작 강씨는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불거진 논란이나 ‘노인혐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강씨에게 더 큰 문제는 “할 게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강씨는 “진짜 고민은 일자리도 없고, 사회생활을 못하니 인간관계도 끊겨서 생기는 고립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사회활동을 해보려고 알아보기도 했지만, 자격증을 따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이어서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씨는 은행에서 일하다 사업을 벌였는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빚더미에 앉았다. 노후 대비를 제때 하지 못했고, 지금은 홀로 생활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 빈곤율은 40.4%로 관련 자료를 제출한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빈곤율은 가처분소득이 전체 인구 기준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강씨는 “한국이 기초적인 노인복지 제도는 잘되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극도의 빈곤한 삶은 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즐기면서 살아가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매달 주거비·식비·통신비 등으로 100만원가량 비용이 든다. 연금 등 고령자를 위한 복지 혜택 등으로 가까스로 충당하고 있는데 여기서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노인복지가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까지는 이르렀지만 인간관계와 자아실현,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인식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는 취지다.

‘무료함’은 강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형섭씨(76)는 “한국이 노인들 살기에는 좋은 나라”라면서 “노인복지 정책이 대부분 잘돼 있다”고 했다. 건설 관련 사업에 종사하던 그는 노후 준비를 마쳤고, 가끔 여행과 등산, 골프로 여가를 즐긴다고 했다. 그런 진씨를 매주 서너 차례 탑골공원으로 이끄는 것 역시 무료함이었다. 여유가 있는 노후생활이라 느끼지만,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진씨의 현실이다.

탑골공원 안 손병희 선생 동상 앞에 앉아 있던 고세일씨(83)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은평구 불광동에서 거의 매일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다. 25년간 대기업을 다니다 정년퇴직한 뒤, 경비원 등으로 일하다 지금은 쉬는 고씨는 수년 전 작은 빌라 한 채를 구입해 생계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여유롭게 취미를 즐길 정도의 경제적·신체적 여유는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축구도 하고 야구도 보러 다녔지만, 이제는 탑골공원 인근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주 일과다.

홀로 사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여가와 취미, 관계 형성과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는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2022~2052년) 결과’를 보면 1인 가구는 계속 늘어 30년 뒤 1000만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됐다.

가구원 수와 상관없이 65세 이상이 가구주인 고령 가구도 2022년 522만5000가구에서 2052년 1178만8000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2022년에는 40~50대 가구주가 전체 가구의 41.8%를 차지해 가장 많았으나, 2052년에 이 비율이 역전돼 70대 이상 가구주 비중이 41.5%로 가장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누구나 곧 노인이 된다”

이처럼 모든 통계와 지표는 한국 사회 구성이 노인 중심으로 바뀔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노인들은 여전히 사회에 제대로 참여할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그나마 노인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던 ‘운전’마저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처지다.

“모든 국민은 사실 (대한노인회의) 정회원과 준회원이다.” 김호일 전 대한노인회장이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노인 운전 금지나 노인혐오와 같은 이슈가 결국은 노인과 비노인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 때문에 생겨난다고 봤다.

그는 “지금 20대나 40대도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된다. 청년과 노인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면 모두가 노인이 되니 나와 노인은 별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노인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은 나중에 노인이 될 이들도 혜택을 보는 것이니 노인과 비노인을 따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노후 준비를 마친 이들과 빈곤 상태로 살아가는 노인을 구분해 지원하는 차등 복지 정책이나, 교통이 발달한 도시와 대중교통 시설이 열악한 농어촌 상황을 감안한 맞춤형 자원 분배 방식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노인의 사회 참여를 도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노인을 ‘사회의 짐’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와 인식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노인학회장을 지낸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 들어섰지만, 노인들이 계속해서 사회활동을 하거나 일정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노인들은 사회에 부담이 되고 각자 역할을 맡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 사회가 심화하는 추세를 볼 때, 노인 인구의 노동시장 편입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나이를 중심으로 노인을 규정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나이란 ‘몇년을 살아왔다’는 걸 의미할 순 있어도, 사회생활이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 교수는 “65세 이상은 노인이라는 천편일률적 구분법이 아니라 실제 어떤 능력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인을 위한 정책은 대체로 빈곤 등의 문제를 겪는 취약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1000만명에 달한다는 노인 인구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사회 구조적으로 노인들의 역량을 확인하고 시간제 등으로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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