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가을비가 연일 내리더니 어느새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목요일(23일)부터 예년 기온을 회복하며 잠시 누그러지겠지만, 다음주부턴 다시 초겨울 추위가 찾아올 전망이다. 요즘처럼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기에는 면역력이 약해지기 쉽다. 특히 혈관이 자주 수축하면서 뜻밖의 건강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다름아닌 '안면신경마비'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다가 문득 평소와 달리 한쪽 얼굴이 뻣뻣하다고 느껴진다면 그냥 넘겨선 안된다.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고, 입이 한쪽으로 삐뚤어지는 증상도 '안면신경마비'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신호다. 오성일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의 도움말로 살펴보자.
◇ 추운 날씨가 '안면신경' 위협하는 이유
안면신경은 우리가 웃고, 찡그리고, 눈을 깜빡이는 등 일상적인 표정을 짓는 데 관여한다. 뿐만 아니라 눈물샘과 침샘을 조절하고 미각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말 그대로 '삶의 질'과 직결된 신경인 셈이다. 60명 중 1명이 경험할 정도로 비교적 흔하다. 오 교수는 "안면신경마비는 한쪽 얼굴 혹은 아래쪽 얼굴이 마비되는 질환으로 크게 중추성과 말초성으로 구분한다”며 “겨울철 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도 쉽게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는 우리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혈관을 수축시킨다. 이 과정에서 안면신경에 염증이 생기거나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신경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차가운 바람에 직접적으로 얼굴이 노출됐거나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라면 발병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 '이마 주름'으로 구분하는 안면마비의 두 얼굴
안면신경마비는 발병 원인에 따라 크게 '말초성'과 '중추성'으로 나뉜다. 두 유형의 가장 큰 차이는 '이마 주름'에 있다. 가장 흔한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안면신경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다. 바이러스 감염, 염증, 부종, 혈류 장애 등과 같은 문제로 발병한다. 한쪽 얼굴 전체가 마비되어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없고,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으며, 입이 반대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중추성 안면신경마비는 뇌졸중, 뇌종양 등 뇌 속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주로 아래쪽 얼굴만 마비되며 이마 주름은 정상적으로 잡힌다. 하지만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 걸음걸이 이상 등 다른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특징을 숙지해 두면 집에서 간단히 셀프 체크를 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거울을 보고 이마에 주름을 잡아보거나 눈을 감아보면 안면신경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한쪽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거나 이마 주름이 한쪽만 생기지 않는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오 교수는 “증상에 기반한 전문 의료진의 신경학적 검사만으로 진단 가능하지만, 환자가 고령이거나 얼굴마비가 양쪽에 발생했다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이 필요할 수 있다”며 “증상 발현 후 2주 후에 근전도검사를 진행하면 안면신경의 손상정도를 알 수 있어 예후 판단에 도움된다”고 설명했다.
◇ 원인 모를 '벨마비'가 70%…"조기 치료가 핵심"
안면신경마비의 원인은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한 람세이-헌트증후군부터 뇌졸중, 뇌종양 등에 의한 뇌신경 질환, 외상으로 인한 두개골 골절, 중이염의 합병증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벨마비(Bell's palsy)'도 흔하다. 전체 안면신경마비의 60~70%를 차지하는 벨마비는 갑자기 발병한다. 전날 밤까지 멀쩡하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돌아가 있는 식이다.
오 교수는 오성일 교수는 “안면마비 증상이 나타나지만,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벨마비(Bell's palsy)를 의심해봐야 한다”며 “벨 마비는 갑자기 발병하는 특징이 있으며, 대표적인 치료법에는 스테로이드와 항바이러스제를 포함한 약물 투여와 전기자극요법, 안면운동치료 등의 물리치료가 있다”고 설명했다.
◇ 방치하면 '영구적인 비대칭'...'우울증' 유발도
벨마비를 포함해 대다수의 안면신경마비는 무엇보다 치료 시작 시점이 중요하다. 발병 후 즉시 혹은 수일 이내에 조기 약물투여와 물리치료를 시행하면 80~90% 이상에서 발병 전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회복률이 크게 떨어지고, 후유증이 남을 위험이 높아진다. 얼굴 근육이 회복되지 않아 영구적인 비대칭이 남거나 웃을 때 눈물이 나는 '악어의 눈물 증후군', 음식을 씹을 때 눈물이 나는 등의 비정상적인 신경 재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얼굴은 대인관계에서 가장 먼저 노출되는 부위인 만큼 심리적 타격도 크다. 실제 안면신경마비 후유증 환자 중 상당수가 대인기피증, 우울증, 사회적 위축 등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 교수는 “드물지만 안면신경마비의 후유증이 수개월에서 수년 이상으로까지 이어져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 심리적 위축과 삶의 질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며 “신속한 진단과 정확한 치료를 통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질환임을 잊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