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정적 제거용’으로 악용 판쳐
의견 다르면 소환 추진해 갈등 심화 우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의식이 높아지면서 현 야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3월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 국민소환제를 담았고,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21대 총선 공약으로 국민소환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민의 이념적 분열이 심각하고 보수∙진보의 극단적 대립이 일상화된 한국에선 체제 불안을 야기할 개악(改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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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정치 일상화 된 베네수엘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문 편이다. 미국∙캐나다의 일부 주와 대만을 제외하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벨라루스 등 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들에 해당 제도가 도입됐다.
이 중 보수 진영에서 ‘무상복지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국가로 꼽는 베네수엘라는 국민소환제에 있어서도 그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베네수엘라는 2000년 국민투표로 ‘신헌법’을 채택하며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선출직 공무원을 국민소환제 대상이 되도록 했다.
그러자 해당 제도를 악용한 ‘정적 제거’가 정치권에 판을 치게 됐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를 끌어내려는 야권의 공작과 자신에게 반기를 든 야당 국회의원을 파면시키려는 대통령과 여권의 공작이 뒤엉키며 사회 혼란이 극심해졌다. 거리로 몰려나온 각 진영 지지자들의 갈등도 심해지면서 베네수엘라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이후 폭력 정치가 일상화 되고 사회적 대화나 의회를 통한 타협이 불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국회에서 여·야는 물론 국민들도 보수와 진보로 쪼개져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실제로 도입된다면 국회의원의 자질이나 과오 여부에 상관 없이 정치색이 다른 인사 제거용으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제도를 제안한 이 대표조차 국민소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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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한 곳은 영국이다. 그러나 영국은 일반적인 주민소환제와는 달리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2015년 제정된 영국의 국민소환법(Recall of MPs Act 2015)에 따르면 범죄행위로 기소돼 구금형을 선고받거나, 14일 이상 하원의원직을 정지 당했을 때만 소환 대상이 된다.
도입하려면 개헌 필수란 게 다수설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법 통과를 주도했다. 이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해당 지역 유권자의 10% 이상, 시장∙군수∙구청장은 15% 이상, 시∙도의원과 시∙군∙구의원은 20% 이상이 주민소환에 서명해야 투표에 부칠 수 있다. 또 유권자의 3분의1 이상이 투표해야 개표가 가능하고, 투표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해당 공직자의 직이 상실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국민소환제도 요건이 이와 유사하게 설정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이광희 의원이 최근 발의한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은 유권자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 과반 찬성을 파면 요건으로 한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제안하며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도록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소환 요건 등은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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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과 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가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개헌을 정치개혁 어젠다로 제안하는 것에 맞서 이 대표만의 의제를 제시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개헌에는 선을 긋되 또다른 의제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포석이란 분석이다. 여권과 비명계는 이 대표 측이 정치개혁을 위한 개헌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을 파고들며 압박해왔다.
역대 유력 대선후보들은 모두 제왕적 대통령제인 5년 단임제 개헌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 측도 2021년 대선 후보 시절 마찬가지였다. 당시 윤석열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개헌의 ‘개’자도 꺼낼 생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표 측도 개헌 대신 국회 입법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일각에서 개헌을 얘기하는데 이미 법안이 제출돼 있어 입법 형식과 절차에 대해선 발의한 법안을 갖고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소환제를 입법으로 도입하는 건 위헌이라는 게 학계 다수설이다. 국회의원의 헌법적 지위를 흔드는 제도를 도입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문 전 대통령도 2018년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을 통해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요구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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