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저항권’ 논란까지 부른 사법 불신

2025-02-12

“모든 독일인은 헌법적 질서를 폐지하려는 자에 대해 다른 구제 수단이 없을 경우에는 저항권을 가진다.”

독일은 1968년 연방헌법인 ‘기본법(Grundgesetz)’을 수정해 이 같은 문구를 넣었다. 파시즘 정당 나치의 독재를 겪었던 아픈 경험 때문이다. 1215년 영국 대헌장을 통해 국가 공인 문서에 최초로 등장한 저항권이 현대 국가의 헌법에서 실정법상 국민 권리로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독일보다 먼저 비슷한 조항을 헌법에 담았던 나라는 근대 프랑스였지만 1795년 개정한 ‘공화력 3년 헌법’에서부터 저항권을 삭제했다. 현재 독일·그리스·포르투갈 등 소수를 제외하면 선진국 대부분이 헌법에 저항권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연방헌법도 마찬가지다. 저항권 오남용 시 불법 폭동, 반란이 촉발돼 민주적 헌법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그 기저에 깔려 있다.

우리 헌법도 저항권을 명문화하지 않았다. 저항권을 실정법상 권리로 보호한 판례도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1979년 10월 26일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변호인단이 ‘유신을 저지하려는 저항권 행사’라는 논리를 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대법원은 “헌법 및 법률에 저항권에 관해 아무런 규정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 단계에서는 저항권 이론을 재판의 근거 규범으로 채용·적용할 수 없다”며 김 전 부장에게 내란죄 유죄를 선고했다. 1996년 말에는 노동계가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된 노동관계법에 반발해 총파업을 벌이며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입법 과정의 하자는 저항권 행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며 선을 그었다. 헌재는 저항권에 의한 집권을 주창했던 통합진보당에 대해 2014년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 12·3 비상계엄 선포 및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사태를 계기로 저항권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윤 대통령에 대해 지난달 19일 내란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강성 보수 지지층 일부가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하며 ‘저항권 행사’라고 강변했다. 이달 7일에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헌재를 겨냥한 폭력을 모의하는 글들이 게시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그 이면에는 저항권으로 포장된 궤변이 깔려 있다. 어떤 경우라도 사법부에 대한 겁박이 용납되면 안 된다.

기존 판례들에 근거해 저항권이 법률적 요건을 갖췄다고 인정받으려면 우선 국가 권력의 ‘명백한 불법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로 인해 ‘헌법 기본 원리에 중대한 침해’도 발생해야 한다. 이에 대응해 다른 합법적 수단으로는 구제받을 수 없을 때에만 저항권은 ‘최후 수단’으로서 행사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통설이다. 최근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수사 및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편법·공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당국의 명백한 불법 및 중대한 헌법 침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재판이라는 합법적 수단을 통해 스스로 구제를 모색할 기회를 갖고 있다. 따라서 지지자들이 최후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명분도 없다.

그럼에도 저항권 논리가 폭력 난동을 변호하는 궤변으로 둔갑해 횡행하는 것은 입법·행정·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부와 헌재에 대한 불신은 심각하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과거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 제가 제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던 사실이 최근 언급되면서 탄핵 심리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에 대해 지난달 23일 헌법재판관 8인 중 보수 성향 4인이 ‘기각’, 진보 성향 4인이 ‘인용’ 의견을 내며 엇갈린 대목도 재판의 정치 중립성과 공정성 논란을 부채질했다.

계엄·탄핵 사태에 따른 국정 혼돈을 조속히 수습하기 위해 관련 재판을 서둘러 진행하려는 사법부의 고민에도 공감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재판의 절차적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흠집이 난다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당사자들의 사법 불복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사법 불신을 키우고 저항권 논란을 불러 진영 간 국론 분열만 증폭시키게 된다. 법치는 재판정 안에서 내려진 판결이 재판정 바깥에서 공감받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계엄·탄핵 관련 사건을 다루는 재판부는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며 상식적·합리적 결정으로 국민 신뢰를 얻고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