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추심 해봐서 안다"…공포에 떠는 '빚 8500만원' 김밥사장 [2025 자영업 리포트]

2025-03-09

전직 자영업자 송영철(51·가명)씨는 채권 추심의 공포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 자신이 금융사에서 채권 추심 업무를 담당했던 이력이 있어서다.

“아침에 출근하면 채무자들에게 전화 한 번씩 돌렸어요. 가족이 받아도 ‘빚 안 갚으면 압류 들어간다’고 으름장을 놓고요. 가정으로 독촉장을 날리거나 차량에 압류 딱지를 붙이기도 했죠.”

명문대를 졸업한 그가 어엿한 금융사를 그만둔 건 고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년을 허비하다 결국 미몽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건 자영업뿐이었다. 작은 김밥집을 차린 그는 매달 몇백만원씩 수익을 올리면서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가 무너져내린 건 ‘코로나 사태’ 때문이었다. 월 1000만원에 가깝던 매출은 200만~300만원으로 추락했고, 매달 300만원 정도의 적자가 났다.

빚을 모르고 살던 그는 정부가 코로나 지원금 명목으로 돈을 풀자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자만 갚을 때는 괜찮았지만 2022년 9월 원금 상환 시기가 도래하자 급격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한 달에 원금만 150만원을 갚아야 할 상황이 되면서 적자 규모는 더 커졌다.

카드론·리볼빙까지 ‘영끌 대출’…자영업자, 1인당 빚 2억 육박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부채는 8500만원까지 불어났다. 더는 빌릴 수도 없었다. “8500만원이 제 신용으로 빌릴 수 있는 최대한도였어요.”

폐업도 할 수 없었다. 폐업 즉시 빌린 돈을 모두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빚의 규모와 채권 추심에 대한 공포의 정도는 비례했다. “과거 내가 했던 일은 이제 대부분 불법행위가 됐죠. 그래도 내가 해봤기 때문에 그걸 고스란히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컸어요.”

전영숙(40·가명)씨는 그 공포가 현실화한 경우다. 그날 그 전화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고객님, 대출금 잔액이 이자를 포함해 200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불어날 거예요. 언제 갚으실 수 있을까요?”

이후 휴대폰이 진동할 때마다 전씨도 함께 떨었다. 그 떨림에 독촉과 협박, 추가 대출 유혹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화를 ‘무음’으로 돌리고 받지 않았다. 하지만 30건 넘는 ‘부재중 전화’ 표시를 확인할 때면 심장까지 떨려왔다.

미용 관련 전문대를 졸업하고 13년간 미용실에서 일하던 그는 5000만원을 대출받아 2016년에 가게를 차렸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한 달 매출 1000만원, 순수익 500만원 안팎은 너끈했다. 그를 꺾은 것 역시 ‘코로나 사태’였다.

한 달 매출이 400만~500만원으로 반 토막 났고, 설상가상으로 원금 상환 시기가 도래했다. 임대료·공과금·재료비에 월 100만원 가까운 대출 상환액까지 더하면 적자를 면하는 건 불가능했다. 생존 본능이 빚을 불렸다. 리볼빙·카드론 등 가능한 대출을 다 끌어쓰면서 빚은 1억2600만원까지 치솟았다. 그가 대출을 일으킨 금융사는 은행과 카드사를 더해 모두 여섯 곳에 달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독촉 전화와 문자메시지는 전씨가 몇 년 동안 매일 경험해야 했던 악몽 같은 일상이었다.

송씨와 전씨가 특이한 걸까. 아니다. 이들은 빚에 짓눌린 한국 자영업자 평균치에 가깝다. 한국신용데이터(KCD)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현재 전체 자영업자 550만 명(무급가족종사자 제외) 중 3분의 2인 361만1000명(사업장 기준)이 대출을 안고 있다. KCD가 집계한 1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 대출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715조9000억원. 지난해 3분기 말 한국은행이 집계한 711조8000억원보다 더 늘어났다. 당시 한은이 별도로 집계한 자영업자 가계대출(지난해 3분기 말 현재 352조6000억원)까지 고려할 경우 자영업자 총부채 규모는 1070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 한 명이 평균 1억9000만원대의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 이 정도다. 자영업자가 개인 명의로 받은 각종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제2·3금융권에 흩어져 있는 ‘그림자 대출’은 공식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더욱 심각한 건 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중 이미 폐업해 빚을 갚을 여력이 사실상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KCD에 따르면 지난 1월 현재 전체의 13.4%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출이 있는 개인사업자 10명 중 1명 이상이 이미 폐업한 상태라는 의미다.

그나마 송씨와 전씨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케이스다. 송씨는 김밥집 옛 직원이 “가게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덕택에 폐업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또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도움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신청해 빚 8500만원 중 77%를 감면받았다. 2000만원 정도의 잔여 대출금은 10년 동안 매달 16만~17만원씩 갚아나가면 된다. 전씨도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개인회생 인가를 받으면서 갚아야 할 빚이 4000만원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빚에 허덕이는 많은 자영업자가 새출발기금 신청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100만원 정도인 개인회생 신청 비용조차 없어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경기 회복이 요원하고 저출생·고령화, 베이비부머의 대규모 은퇴 등 악재가 많아 자영업 부채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며 “출구전략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는다면 국가 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진석·조현숙·하준호·전민구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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