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국’ 일본, 핵무기금지조약 회의에 정부 참관 보류···“비겁하다” 비판

2025-01-26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올 3월 미국에서 열리는 제3차 핵무기금지조약(TPNW) 체결국 회의에 옵서버(참관국)로 참여하는 대신 여당 의원을 회의에 파견하는 안을 조율 중이라고 26일 아사히신문 등이 보도했다. 국가 안보를 위한 현실적 접근법으로 해석되지만, 현지에서는 “비겁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전날 이같은 방침을 정권 간부들에게 전달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옵서버는 조약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회의에는 참석하는 국가를 뜻한다.

일본 정부·여당은 자민·공명 소속 의원을 파견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TPNW 회의 내용을 파악해 향후 대응에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파견 의원은 피폭지인 히로시마 등 의원을 중심으로 인선할 방침이다. 야당과 초당적 파견단을 구성하는 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피폭국’ 일본에서 핵무기 폐기 주장은 딜레마로 여겨져 왔다. 당장의 국가 안보를 위해 우방국의 핵이 불가피하다는 주장 한편에, 일본이 히로시마 등 원폭 피해국이란 정체성을 내세워 온 만큼 폐기를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자리해 왔다. 최근엔 피폭자 단체인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연립여당인 공명당 내에서도 TPNW 참가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요미우리는 “일본이 TPNW 회의에 옵서버로 참여하면 미국의 신뢰 저하를 부르고 주변국이 ‘일본은 미국 핵에 의한 방어를 바라지 않는다’고 오인할 우려가 있다”며 “총리는 보류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결론지었다”고 전했다. NHK는 “미국의 핵 억지력을 포함한 미일동맹이 일본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는 가운데,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현실적인 노선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노력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시바 체제 정부·여당이 중간점을 찾은 것이란 취지로 분석했다.

이에 대해 가와노 고이치 나가사키현 평화운동센터 피폭자 연락협의회 회장은 “정부 외의 형태로 참가하는 건 비겁하다”며 “정부가 국가를 대표해 참가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발했다. 히로시마현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이사장이자 니혼히단쿄 대표위원인 미마키 도시유키는 “왜 정부가 정당한 참가를 하지 않는지 화가 나고 유감스럽다”면서도 여당 의원 파견 가능성에 대해 “1밀리미터(㎜)라도 진전이다. 제4차 당사국 총회에서는 좋은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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