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71세, 루비오 53세…은근한 경고
남중국해 관련해 한국 상대로도 사용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의 첫 통화에서 ‘호자위지(好自爲之)’라는 성어를 사용했다.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훈계할 때 사용하는 성어이다.
26일 중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왕 주임과 루비오 장관은 지난 24일(미국 현지시간) 통화하며 미·중 관계와 대만·남중국해 문제 등 국제 주요 사안을 논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 20일 출범한 이후 양국 외교수장 통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이 역내 동맹국에 충실히 헌신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강압적 행동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루비오 장관은 그러면서도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고 미국 국민을 최우선에 놓는 미·중 관계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 주임은 루비오 장관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왕 부장은 “대국은 대국답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스스로 잘 처신하고 중국과 미국 양국 인민의 미래와 세계 평화 및 안정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스스로 잘 처신하라”는 문구의 중국어 원문이 ‘호자위지’였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이 성어는 교사가 학생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훈계할 때 사용된다. 중국 외교부는 이 표현을 영어로는 ‘액트 어코딩리(상황에 맞게 행동하다·act accordingly)라고 번역했다.
송원디 애틀랜틱 카운슬 중국 허브 연구원은 호자위지는 연장자가 아랫사람을 이끄는 뉘앙스가 있는 말이라며 “71세의 왕 부장이 (53세의) 루비오 장관에게 개인적 이유로 중·미관계의 전반적 경향에 영향을 미치지 말라고 일깨웠다”고 싱가포르 중국어 매체 연합조보에 말했다. 연합조보는 왕 주임의 표현을 두고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도 “좀 무례한 것 아닌가” “손톱 밑 가시가 있는 표현”이란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왕 주임은 루비오 장관이 상원의원 재직 시절 신장위구르 인권 상황을 비판해 중국의 제재 대상이 된 사실을 겨냥해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왕쯔천 중국세계화연구센터 연구원은 “중국 고전 특유의 모호한 표현을 이용해 외교적 격식을 지키면서 은근한 경고를 전달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영문판은 “루비오 장관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를 희망한 것”이라고 해설했고 차이나 데일리는 “루비오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외교당국은 한국을 겨냥해 호자위지란 표현을 사용한 적 있다. 지난해 3월 임수석 한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전, 규칙 기반 질서 유지와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말하자, 왕원빈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은 남중국해 문제의 당사국이 아니다”라면서 “스스로 잘 처신하고(호자위지), 바람에 휩쓸려 덩달아 떠들지 않으며, 양국 관계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