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현지시간) 왕이(王毅) 중국 정치국위원 겸 외교부장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첫 통화에서 건넨 사자성어 “스스로 알아서 잘하라(好自爲之·호자위지)”가 중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왕 위원은 루비오 장관에게 “대국이 대국의 모습을 갖추려면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며 “당신은 스스로 알아서 잘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관영 인민일보가 25일 보도했다. 루비오 장관은 지난 2020년 중국 신장과 홍콩 관련 문제로 두 차례 중국 입국이 금지되는 제재를 받고 있다.
왕이웨이(王義桅)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루비오 장관은 과거 ‘잘못된 대(對)중국 입장과 발언’으로 중국의 제재를 받았다”라며 “이른바 ‘호자위지’는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과 교섭을 해야만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먼저 ‘잘못된 입장을 고쳐야만’ 중국이 접촉에 동의하겠다는 뜻”이라고 대만 연합보에 밝혔다.
미국 언론은 보다 직설적으로 왕 위원의 발언을 보도했다. 미국 AP통신의 베이징 특파원은 “잘 처신하라(Behave yourself)”로 보도했다. 로이터 역시 “잘 알아서 행동하라(conduct yourself well)”라는 훈계 뉘앙스를 그대로 전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완곡하게 표현했다. 중국 외교부는 “올바로 행동하라(act accordingly)”는 공식 영문 발표문을 베이징 한국 특파원단에 배포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올바로 결정하라(make the right decisions)”로 다르게 보도했다.
중국 네티즌은 왕 위원의 패기를 평가했다. 한 네티즌은 “패기가 넘친다. 루비오가 중국어를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중국어가 영어보다 더 패기 있다”는 소감을 올렸다. 다른 네티즌은 “중국인은 모두 ‘호자위지’가 종종 어른이 후배에게 완곡하게 경고나 훈계할 때 쓰는 말이란 것을 안다”며 흥분했다.
중국 관영매체 역시 왕 위원의 ‘훈계론’에 힘을 보탰다. CC-TV의 SNS 계정인 ‘위위안탄톈(玉淵譚天)’은 25일 “(루비오가) 만일 반중(反中) 입장을 고집한다면 그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알아서 하라”는 뜻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호자위지’라며 외국에 경고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3년 11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영국에서 체결한 ‘다우닝가 협의’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에 불가결한 요소”라는 문구를 문제 삼았다. 당시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말을 삼가고 행동에 신중하고 잘 알아서 처신하라(好自爲之)”라고 했다. 지난해 3월 남중국해 분쟁해역에서 중국 해경선이 필리핀 선박에 물대포를 쏘며 발생한 충돌에 한국 외교부가 우려를 표시하자 왕원빈 대변인이 “나는 다시금 한국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好自爲之), 분위기에 휩싸여 덩달아 떠들지 않으며, 중·한 관계에 불필요한 부담을 늘리는 일을 피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통화로 미·중 정상회담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트럼프 1기 양제츠 당시 국무위원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통화는 취임 한 달이 지난 2월 21일에 이뤄졌다. 트럼프·시진핑 정상간 전화 통화 11일 만이었다. 4년 전 바이든 행정부 출범 때 양제츠·블링컨 통화는 취임 18일 뒤에 이뤄졌다. 이번에는 미국 신 행정부 출범 5일 만에 미·중 외교장관 통화가 이뤄지자 부임 100일 안에 중국을 방문할 의지를 밝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외교장관 간 정상회담 실무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