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국제개발처 프로그램 83% 감축

트럼프 행정부 2기는 예상했던 대로 전 세계에 많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세계의 규범이 되었던 국제법과 양자·다자간 조약이 무효가 되고 있으며,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지칭했던 트럼프는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보호무역주의를 부활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충격은 국제개발처(USAID)의 역할 축소 또는 폐지 추진이다.
경제부흥을 통한 봉쇄
1961년 케네디 행정부는 냉전체제 하에서 기존의 반공 봉쇄정책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국제개발처를 설립했다. 본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시작된 봉쇄정책은 군사적 수단보다는 심리적·경제적 봉쇄정책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이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 수단보다는 경제적 부흥을 통한 봉쇄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소련의 냉전 비동맹국 포섭 반둥회의에 맞서 1961년 USAID 설립돼
“저개발국 공산주의 확산 막는 길은 사회 안정”…경제 원조로 방향 전환
박정희도 비판한 구호 대신 차관 제공, 각국의 지속가능한 성장 도와
미국의 역할 부재 중국에 기회 될 수도…한류 한국에도 위기이자 기회

세계전쟁의 능력을 갖춘 국가들을 자유시장에 기반하여 재건함으로써 공산주의가 확산될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 초기 봉쇄정책의 핵심적 목표였다. 따라서 중서부 유럽과 일본이 그 주요한 대상이 되었으며, 1947년 서유럽 부흥을 목표로 한 마셜 플랜이 실시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 근거한 경제부흥을 통한 자신감을 심어줌으로써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군사적 봉쇄에 대한 반성
경제적 봉쇄정책은 1949년 소련의 원자탄 실험과 중국혁명,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원조에 집중하는 것은 극좌 전체주의의 세계혁명을 막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1950년대 수소폭탄의 개발이 이루어졌고, 한국에서도 공산군 측 중립국 감독위원단의 철수와 주한미군에 전술핵 배치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 미국의 모든 원조는 상호안전법에 근거하여 이루어졌고, 이는 군사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1950년대 후반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스탈린 사후 집권한 흐루쇼프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원조를 강화했다. 1955년 반둥회의를 기점으로 형성된 비동맹국가들을 소련에 우호적인 국가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소련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초기 냉전정책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의 군사 중심의 원조와 개입이 비판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 내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개발도상국에서 자국 경제성장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군사 중심의 미국의 대외정책이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산주의는 전염병과 같다
이들은 공산주의를 하나의 전염병으로 규정했다. 전염병이 한 지역에 창궐한다고 하더라도 몸이 허약한 사람들에게 주로 전염되는 것과 같이 공산주의도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더 강력하게 퍼져나간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불안정한 사회적 조건을 갖고 있는 저개발국가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원조를 통해 사회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이 원조 정책을 바꾸어야 하는 사례 중 하나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1950년대를 통해 단일국가로는 가장 큰 규모의 미국 원조를 받는 국가 중 하나였다. 전쟁으로 인한 복구가 필요했고, 정전협정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하는 대신 한국군의 유지비를 미국이 지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1950년대를 통해 한국에 거대한 원조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군사원조에 집중했기 때문에 나타난 불가피한 결과였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 케네디 행정부의 평가였다. 1950년대 한국에 대한 실패한 원조 결과는 국제개발처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케네디 행정부에 관여한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원조 대상국을 개발도상국으로 확대하고 구호 성격의 군사원조에서 경제부흥을 위한 개발원조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로 1년 단위의 단기 원조에서 장기간의 원조로 바꾸어 수혜국에서 중장기적 계획을 입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공짜가 아니라 차관으로 지급함으로써 이를 갚도록 해야 한다.
이 중 장기간에 걸쳐 차관으로 주어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1950년대에 시행했던 1년 단위의 구호 원조만으로 수혜국이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갖출 수는 없었다. 이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미국의 원조정책을 비판한 지점이기도 했다. 미국의 원조가 영원할 수 없다면, 수혜국 자체의 성장과 발전이 필요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은 미국의 시장을 확대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의 소비력이 높아져야 했다. 경제개발계획을 위한 원조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냉전 초기 경제 부흥정책이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서 196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으로 확대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경제성장 이끈 국제개발처 원조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중장기 계획을 입안하도록 했다. 입안된 계획을 심사하여 실현 가능성이 있을 때 그에 대하여 장기 저리의 차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는 수혜국이 차관을 받아 수익을 내야만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미국의 전문가들이 계획 수립에 참여함으로써 개발도상국의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도 만들 수 있었다.
아울러 이러한 원칙은 원조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수혜국 내부의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 미국의 이란·과테말라 개입이 쿠데타를 이용한 정치·군사 개입이었다면, 1960년대 이후에는 각국의 정책 수립과정에 대한 내부 개입으로 변화하였다. 1960년대 초 주한미국 대사 브라운(Winthrop G. Brown)은 한국 정부의 많은 경제 관련 기관에 미국의 관계자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를 관리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기관이 미국 국제개발처(USAID)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를 번영의 시대로 선포했다. 미국의 국제개발처는 개발차관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원하는 개발도상국에 적극적인 원조를 시행하겠다고 선포했다. 국제개발처는 한국의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
미얀마 지진 구호 불발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개발처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무장관 루비오(Marco A. Rubio)는 지난 3월 10일 국제개발처의 프로그램을 83% 취소하겠다고 했다. 취소된 5200건의 계약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얀마의 지진 구호를 준비하던 팀도 현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국제개발처는 지난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미국(美國)이 한자어의 표현대로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기관이다. 강대국으로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을 도와주는 국가로서의 미국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기관이었다.
국제개발처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으로서의 하드파워가 아니라 소프트파워로서의 역할을 해 온 기관이었다. 이는 국제개발처를 만든 사람들에게도 군사적 개입을 하는 미국이 아니라 번영을 도와주는 미국으로 이미지 변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가 아니라 미국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중국의 기회와 한국의 위기
이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대외정책과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이기도 했다. 중국은 일대일로로 주변국과의 물리적 연결을 강화하고 있지만, 소프트파워 부재로 인해 영향력이 강력하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개발처의 역할이 줄어든다면, 이는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제 다시 민주주의로의 길로 들어선 한국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강소국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류의 붐으로 인해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갖추고 있는 한국에 국제개발처의 역할 축소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줄 것이다.
2017년에 이어 또다시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해야 하는 새로운 한국 정부는 너무나 많은 일에 급속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 중 첫 번째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고, 이에 대한 주변국 정부의 대응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국제개발처의 변화와 같은 다양한 세계정세의 변화에 대해 우리의 국가이익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