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고유 문화를 소재로 활용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정치권에서도 뜨겁다.
이재명 대통령은 20일 아리랑 국제방송 프로그램 ‘케이팝 더 넥스트 챕터’(K-Pop:The Next Chapter)에 메기 강 감독 등과 함께 출연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 문화의 힘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본격 시작되고 있다”며 “토대를 잘 갖춰 핵심 산업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거목이 자라려면 풀밭이 잘 가꿔져 있어야 한다. 순수예술 분야 지원·육성도 필요하다”며 “그건 시장이 아닌 정부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특히 문화에 대해선 정치권력이 휘어잡고 활용하고 싶어 하는 통제 본능이 있다. 블랙리스트처럼 감시·규제를 하니 문화 예술이 죽어가는 측면이 있다”며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로, 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난 9일 SBS 유튜브에서 케데헌에 대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케데헌엔 서울 남산, 북촌 등 장소가 생생하게 묘사돼 외국인 관광객에게 명소로 입소문 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한강 변 자전거길, 남산 산책길처럼 시민들이 즐기는 공간이 외부인의 호기심을 자극해 관광으로 이어진다”며 “우리끼리 재미있게 즐기면 외국인들이 와서 체험하고, 이것이 곧 도시경제의 원리”라고 덧붙였다.
케데헌은 국민의힘 당대표 TV토론회에서도 등장했다. 안철수 후보는 지난 19일 토론회 도중 김문수 후보를 향해 “케데헌이라고 들어봤냐”고 질문했다. 김 후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라고 하자 안 후보는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컨텐트의 대명사인데 모르시냐”며 애니메이션 내용을 줄줄 읊었다. 그러면서 “제1 야당 당대표라면 이 정도의 시대적인 트렌드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말씀드렸다”고 첨언했다.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뮷즈’(뮤지엄 굿즈)의 성과에도 담당 공직자들에게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케데헌 열풍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호랑이 캐릭터 ‘더피’ 인형과 ‘까치호랑이’ 배지를 언급한 것이다.

정치인들이 케데헌을 고리로 “K-콘텐트 발전”이라는 구호는 외치지만, 정작 산업 발전을 위한 논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7일 발표한 ‘지식재산권(IP)의 산업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지식재권자 50’ 명단에 한국의 자리는 없었다. 케데헌 IP는 넷플릭스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은 수익도 대부분 미국 제작사 소니 픽처스가 가져간다. 보고서는 “스토리 중심의 수퍼 IP 전략을 입체적으로 지원할 ‘케데헌 법안’이라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용석 서경대 교수(AI빅데이터전공)는 “중국 무술과 전통문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역시 수익은 미국 제작사 드림웍스가 가져갔다. 케데헌 역시 미국 제작사가 투자하고, 한국계 미국인이 감독을 맡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한국 정부가 뼈아프게 느껴야 한다”며 “10억원씩 100개를 나눠서 투자할 게 아니라 케데헌처럼 1000억원을 투자할 용기와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