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민주주의 어렵다

2025-02-03

올해는 광복 80년이 되는 기쁜 해다. 우리는 광복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몇 안 되는 나라로 자부해왔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의 대국이 됐으며,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한 지 오래됐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과 탄핵사태를 보면서 80년이라는 세월이 이 땅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직선제로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모양은 취했지만, 내전에 버금가는 작금의 진영 다툼은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정치권 공론장 주관적 진실로 무장

유튜브, 편향적으로 상대방 악마화

공영방송은 표현의 자유 좁게 인식

알고리즘 세상에는 다양성이 없어

성찰이 필요한 대목 중의 하나가 표현의 자유다. 민주주의를 창안한 아테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에 파레시아(parrhesia)와 이세고리아(isegoria) 두 원리가 포함된다고 보았다. 파레시아는 원하는 대로 두려움 없이 말할 자유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자유다. 참이라고 믿는다면 용기 있게 비판하는 권리다. 이에 반해 이세고리아는 시민 누구나 평등하게 말할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토론하였다. 정책을 결정하는 민회에서는 모두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민회는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아테네 공동체는 공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파레시아와 이세고리아 균형을 통해 발전하였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은 했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제하지 않았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는 공론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계층과 능력이 달라도 소통과 설득을 통해 공론을 모색했다. 아테네가 표현의 자유에 상충하는 두 원리를 포함한 이유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자유가 균형 있게 공존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개인은 원하는 대로 살고, 공동체는 번갈아 가며 지배하는 것을 민주주의 핵심 원리로 보았다. 간섭받지 않고 말할 자유를 가지며 동시에 시민 간에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 후반 아테네가 민중(demos)의 욕망을 겨냥한 대외 정책을 택하면서 두 원리 간에 균열이 생겼다. 민중의 권한 강화는 계층 간 대립을 격화시켰다. 파레시아와 이세고리아에 내재한 가치를 조정하는 데 실패한 아테네의 국력은 약화하였다. 스파르타에 패한 이후 아테네는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테네는 망했지만, 파레시아와 이세고리아 원리는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핵심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언론 자유를 천명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우리나라의 헌법 제21조 제1항, 양심의 자유, 행복추구권, 언론의 진실 추구 의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 원칙 등은 파레시아 원리를 계승한 것이다. 법 앞의 평등, 견제와 균형, 공론장 이론, 영국 공영방송 BBC의 ‘적절한 불편부당성(due impartiality)’ 보도 원리, 언론의 ‘견제적 민주주의(contestatory democracy)’ 역할 등은 이세고리아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정치권과 공론장은 조각조각 파편화되었다. 각 진영은 파레시아로 무장해 있다. 진영을 넘나드는 이세고리아는 찾기 어렵다. 정치 지도자들은 사생결단식 권력투쟁에 취해있다. 상대편 말은 듣지 않는다. 정치는 언제부턴가 각을 세워 반대하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우리의 소통 공간에도 포용과 관용은 찾기 어렵다. 댓글에는 혐오와 공격적 표현이 넘친다. 공영방송 구성원 다수는 파레시아를 표현의 자유로 생각하는 듯하다. 공영방송에는 그러나 이세고리아를 제고할 의무가 있다. 정치 유튜브 플랫폼의 편향성은 퇴행적이다. 상대를 조롱하고 악마화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기반한 동영상 플랫폼과 검색엔진 네이버는 똑같은 세상을 반복해서 찍어낸다.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알고리즘 세상에는 이세고리아가 없다. 인공지능은 사회적 진실을 성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귀를 닫고 진영 안에서 서로 듣기 좋은 말만 한다면 파레시아는 충족될지 모르지만, 이세고리아는 사라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불신받고 공론장이 붕괴한 원인은 두 원리 간에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지난날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를 넘어섰다. 사람은 누구나 파레시아를 통해 자기 생각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에는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 이세고리아는 결국 타인의 파레시아도 소중하다는 역지사지 자세다. 파레시아와 이세고리아 간에 균형이 무너질 경우,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테네 흥망에서 보듯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배가 가라앉으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민주주의가 어렵다. 이대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힘겹다.

손영준 국민대 미디어 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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