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해외 주식투자를 늘리고 있는 국민연금도 환율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기금 고갈 우려를 생각하면 국내보다 수익률이 좋은 해외 투자를 늘리는 게 맞는 방향이지만, 이는 달러에 대한 수요를 늘려 원·달러 환율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해외 주식투자의 양면성이 있는 만큼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자료를 보면, 2019년 해외주식 투자(직·간접 포함)는 166조5280억원이었으나 올해 8월 말 기준 389조553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자산에서 해외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해 늘어 34.1%에 달한다.
해외 투자 확대는 ‘양날의 칼’이다. 당국의 외화유동성이 고갈되는 위기시 연금의 해외 자산이 대응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외 주식 투자 수익률이 국내보다 높아 대외금융자산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올해(8월 잠정치) 해외 주식 수익률은 19.2%인 반면 국내 주식 투자율은 3.78%에 머물렀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해외주식 투자를 늘릴수록 원화 가치 하락을 자극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투자를 달러로 하기 때문에 해외 투자를 늘릴수록 달러를 사들이는 양도 증가한다. 특히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 절반 이상(66.7%)은 북미 지역에 집중돼 있다. 덩치가 큰 국민연금이 달러 매입을 늘리면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8월 ‘우리나라의 해외증권투자 현황과 외환시장에 대한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은 해외주식 투자는 물론 해외채권 투자에 대해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영향을 받는다”며 “향후에도 해외 증권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그에 따른 외환수요 증가로 원화 환율 상승 압력이 나타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고환율일 때 해외 주식을 매입하는 건 비싼 가격에 주식을 사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또 앞으로 기금 부족으로 해외 자산을 대거 팔아야 할 경우, 반대로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해외증권 투자 시기를 조절하거나 국민연금과 기획재정부·한국은행 외환스와프(맞교환) 거래 한도를 늘리는 등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0원에 접근해가던 2022년 국민연금과 외환스와프(맞교환) 거래를 체결한 바 있다. 이는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하지 않고 한은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빌려 투자해 만기일에 되갚는 방식이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고 달러를 가져올 수 있는 셈이다. 이 방식을 처음 도입한 직후 원·달러 환율은 다소 진정세를 보인 바 있다. 당시 100억 달러로 설정한 외환스와프 한도는 지난해 350억 달러, 올해 6월 500억 달러로 늘어났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전세계에 분산투자를 하는 건 수익률 관점에서 좋은 방안”이라면서도 “정부로선 국내 주식시장의 매력도를 높여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고, 외환스와프 한도도 필요하다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 요인에 기인한 환율의 일시적인 급등시에는 외화조달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절해 투자에 따른 환차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