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기존 메모리를 넘어 연산 등 시스템 반도체 기능도 맡게 되면서 반도체 영역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발전에 따라 이같은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기술 변화에 대응한 생태계 확장이 필수라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김정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지난 11일 제주대에서 열린 '제14회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주포럼'(반디제주포럼) 기조연설에서 “HBM4부터 일부 계산 기능이 HBM 베이스 다이(가장 아랫단의 반도체)에 들어간다”며 “베이스 다이 설계 능력 확보 등 메모리 이외 분야로 생태계를 확대해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HBM 기본 구조를 창안한 AI 반도체 분야 권위자다. HBM 핵심 기술인 실리콘관통전극(TSV)과 인터포저 등의 기술을 20년 이상 연구해 왔다.
SK하이닉스가 하반기 양산을 시작하는 6세대 HBM 'HBM4'를 사례로 든 김 교수는 기존 시스템 반도체 영역이었던 연산을 HBM 베이스 다이에서 일부 담당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AI 가속기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 간 데이터 이동 속도가 더 빨라져야 하는데, 이를 GPU에서만 담당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메모리 콘트롤러 등 시스템 반도체 기능을 HBM4에 담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더 빠른 데이터 전송을 위해 HBM에 시스템 반도체 역할을 부여하는 셈이다.
김 교수는 “베이스 다이는 D램이 아니라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해서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 필요하다”며 “베이스 다이에 어떤 기능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고객 맞춤형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GPU와 메모리 사이 경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AI 가속기에서 계산을 할 때 중앙처리장치(CPU)가 관장하고, GPU는 행렬 계산을 하고, HBM은 데이터 처리를 했는데, 이런 구조로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며 “향후에는 CPU 없이 GPU와 HBM만으로 구동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도 달라져야 한다. 생태계를 바꾸는 게임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반도체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3차원 패키징 공정 △실리콘과 유리 등 기판 소재 △발열 관리와 냉각 △전력 절감 등이 차세대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발열 해소를 위한 냉각 측면에서는 반도체를 냉각액에 넣는 액침냉각에서 더 나아가 칩 안으로 물이나 액체 질소를 직접 투입하는 기술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제주대 반도체디스플레이연구센터와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가 공동 주최한 14회 반디제주포럼에서는 산업 핵심으로 부상한 AI에 대한 발표도 이어졌다.
이선길 도쿄일렉트론(TEL) 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가 반도체 제조와 공정 개발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고, 양원석 원익IPS 고문은 AI 기술 융합으로 시너지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