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91화. 러브크래프트와 코스믹 호러

2025-08-10

이해할 수 없는 ‘미지’에서 비롯한 공포와 절망

1937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서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자신을 ‘첨삭이나 편집을 맡는 서푼짜리 글쟁이’라고 소개한 그는 여러 잡지에 글을 싣고 동인지도 냈지만,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죠. 하지만, 그가 죽고 오래지 않아 시작된 인기는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어집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은 한 권도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꾸준히 소개되죠.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보드게임과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은 명작으로 사랑받으며,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이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사정합니다. 그의 작품만이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은 여러 작품은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었죠. 그의 이름은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 훗날 크툴루 신화 대계로 알려진 독특한 세계관에 영감을 준 작가입니다.

크툴루라는 이름이 생소한가요. 그는 우주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신입니다. ‘위대한 옛 존재(Great Old One)’라는 차원을 넘어선 이들 중 하나로, 실제 모습은 설명할 수 없지만 보통 수많은 촉수를 지닌 문어 머리 모양 거인으로 그립니다. 그 힘은 너무도 끔찍해서 우주와 차원을 넘어 대륙 하나 정도는 가볍게 날릴 수 있죠. 지구 어딘가에 가라앉은 고대 도시 르리예에 잠든 크툴루가 깨어나면 지구를 넘어 우주 멸망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크툴루를 시작으로 아자토스, 하스터, 요그 소토스 등 러브크래프트와 여러 작가가 만든 설정은 그의 사후,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중에서도 작품 속 도시 이름을 딴 출판사 아캄을 설립한 어거스트 덜레스에 의해 ‘크툴루 신화’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여러 작품에 쓰였어요. 보통 우주적 공포(Cosmic Horror)라 불리는 끔찍한 공포물이 많지만, 코믹하게 패러디되기도 하죠. 인간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니알라토텝이 미소녀 캐릭터로 등장하는 작품은 재미있지만 기괴하죠. 크툴루 신화는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J.R.R. 톨킨의 신화적 세계관(레젠다리움)과 함께 널리 사랑받는 유명한 창작 신화입니다.

크툴루 신화는 게르만이나 그리스 신화와 다릅니다. 크툴루 신화의 신적 존재는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적 생명체, 일종의 외계인이죠. 그들을 신처럼 여기는 건 그들의 존재감이 너무도 대단하고 강력해 인간 따위는 감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적 신격체인 그들은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발광하거나 죽어버릴 정도인데, 작품 속에서 이들은 정체를 알 수 없으며 일찍이 세상에 여러 영향을 미쳤지만, 현재는 대부분 봉인되거나 멀리 있어요. 우주 어딘가 또는 옛 지구에 있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달라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 이해할 수 없죠. 우리가 아는 여러 신화 속 신들이 인간과 비슷한 감정과 욕망을 지니고 보통 인간을 만들고 지키며 벌하면서도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인간 따위엔 관심이 없어요. 이따금 우리 세계에 간섭하거나 흥미를 갖기도 하지만, 장난이나 실험에 가깝습니다.

러브크래프트를 비롯한 우주적 공포, 코스믹 호러는 이렇게 변덕스럽게 세계의 운명을 뒤흔드는 이들이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죠. 그래서인지 흔히 주인공이 끔찍한 결말을 맞이한다고 생각하지만, 크툴루가 깨어나려다 잠든 소설 『크툴루의 부름』처럼 해피엔딩 같은 것도 있죠. 그래도 이들 이야기는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운 순간은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를 마주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 그 자체가 가장 큰 공포로 다가오죠. 나아가 우리 인간이 그 미지를 이해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여길 때 공포는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어떻게 할 수 없으며, 죽은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죠.

코스믹 호러는 이러한 공포를 전합니다.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 존재,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를 통해 ‘운명은 우리 손에 있지 않다’라고 말하죠. 미지의 두려움이 밀려올 때, 사람들은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어집니다. 지진‧태풍‧해일….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마주해 온갖 신들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주술과 예언에 기댄 것처럼 절망스러운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신앙에 빠져들곤 하죠. 인간의 지식이나 언어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우리가 아는 과학과 상식,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초라하고 가치 없는 존재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주인공이 위기를 벗어나도 공포가 이어지는 코스믹 호러의 대가, 러브크래프트. 하지만 동시에 그는 과학 덕후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문학책을 만들고, 과학 잡지에 글을 싣곤 했죠. ‘기괴한 환영과 악몽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그는 과학을 존중하고 좋아하며, 우주의 미지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엔 언제나 더 알고 싶다는 마음, 호기심도 숨어있죠. 코스믹 호러, 크툴루 신화가 꾸준히 사랑받는 건 그것이 단순한 공포만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의미, 그리고 미지의 저편을 향한 질문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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