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노무현 정부는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강행했다. 외환위기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정규직 해고법’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2년이 되기 직전 비정규직을 해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직장에서 더 일하고 싶어도, 기간제 근로자는 2년마다 쫓겨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야 했다.
주휴수당·노란봉투법·4.5일제 등
약자 위한 정책이 약자에게 피해
현장 고려, 정교한 정책 설계해야
문재인 정부에서의 최저임금 인상도 비슷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내걸었던 문 정부는 5년간 최저임금을 총 41.6% 인상했다.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물가상승률(9.7%)을 크게 웃도는 상승률에 자영업자는 인건비를 줄이려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는 아예 폐업을 선택했다.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던 문 정부였지만, 2018~2020년 실업률은 3.8~4%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독일의 경제학자 호르스트 지베르트가 2001년 출간한 『코브라 효과(Der Kobra Effekt)』에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과거 영국은 식민지 인도 델리에서 코브라를 없애기 위해 코브라를 가져오면 포상금을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자 인도인들은 코브라를 사육해 포상금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포상금을 폐지하자, 길거리는 인도인들이 버린 코브라로 넘쳐났다는 내용이다. 정부 정책이 예상치 못한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이런 코브라 효과가 우려되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기 근로자에 주휴수당을 지급하고, 현재 1년 이상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퇴직급여를 3개월 이상만 일해도 받도록 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 방침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주휴수당은 직원이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 일당을 더 주는 제도다. 지금도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은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기 근로자’를 채용하거나, 무인주문기를 들여놓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젠 초단기 근로자에도 주휴수당을 주고, 3개월만 일해도 퇴직금을 줘야 한다면 자영업자들은 지금보다 고용을 줄여야 하는 동기가 더 커진다.
재계의 반대에도 정부에서 밀어붙이는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노사관계에 혼란을 가져오는 부작용만 있는 게 아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 노동자도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쟁의 행위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법률 대응 능력이 취약한 영세 중소기업 입장에선, 손해배상 청구 카드가 사라지면 노조의 파업 압박에 더 휘둘릴 수 있다. 원청기업은 되려 강성 노조가 있는 하청업체와 거래를 단절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업체가 도산하면 결국 중소협력업체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주 4.5일 근로제는 주 52시간제 도입 때의 부작용을 떠올린다. 추가 근로를 못 해 월급봉투가 얇아진 저소득 근로자들이 퇴근 후 투잡을 뛰는 사례가 속출했다. ‘저녁 있는 삶’은 가능해졌지만, ‘저녁밥 없는 삶’이란 경제적 고통이 현실화됐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방향은 맞았지만, 우리 사회에 적용이 너무 빨랐다. 주 4.5일제 역시 바로 도입한다면, 대기업·공기업·공무원 등 이른바 ‘노동귀족층’은 혜택을 보겠지만, 단순 노무 종사자들은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소득 저하 및 고용 불안 걱정에 시달릴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은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을 이른바 ‘기업사냥꾼’의 공격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기업은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되고 그들의 기술개발, 시장개척 의지를 꺾는다. 또 정년 연장은 기업 부담을 가중하고, 고용시장의 약자인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다.
최근 정부의 정책 추진 속도를 보면 국정 운영동력이 가장 강한 집권 초기에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는 분위기다. ‘개국공신’을 자처한 노동계의 대선 청구서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약한 계층을 위한 정책을 서두른 나머지 약한 계층에게 해가 되는 아이러니가 빚어지지 않을까 짚어봐야 한다.
앞서 언급한 책 『코브라 효과』의 부제는 이렇다. ‘경제 정책의 오류를 피하는 방법’. 정책 당국은 정교한 정책설계와 현장 상황을 감안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선의의 정책이 반드시 선의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