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7년 겨울 촛불을 든 청(소)년들은 최순실의 ‘빽’으로 부당하게 입학한 정유라의 부정 입학에 분노를 쏟아냈다. ‘불공정’에 대한 항의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국가의 ‘무책임’과 박근혜의 ‘무능’을 직관한 것도 “이래선 안 되겠다”며 거리로 나선 이유가 됐다.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다”는 청(소)년들의 바람은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자들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고, 이른바 ‘공정한 불평등’과 능력주의가 ‘시대 정신’으로 대두되는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정이 상식이 되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누군가는 공정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학벌사회를 조장하는 지금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고, 절차적 공정성에만 매몰돼 내용적 공정성을 간과하면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2024~2025년 겨울 응원봉을 든 청(소)년들은 “소소하게 ‘덕질’할 수 있는 세상, 학원 끝나고 물떡볶이 먹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교과서나 영화에서 봤던 ‘비상계엄’과 군대를 동원한 국가 폭력에 소중한 내 일상이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앞선 세대가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며 일궈낸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2024년 12월 8일 울산 롯데백화점 앞에서 시험을 이틀 앞두고 나왔다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국가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우리의 선대가 어떻게 지켜낸 민주주의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꺾이고 짓이겨지고 피를 토하며 투쟁했는지, 3.1운동의 함성, 4.19혁명의 투쟁, 5.18항쟁의 피, 그리고 촛불혁명의 외침을 기억하라. 기억의 힘은 강하다. 민중의 연대는 뜨겁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와 채 상병 사망 사건, 대통령 부인의 주가 조작과 명품백 수수, 명태균 공천 개입 사건을 거치면서 윤석열 정부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극우 유튜버와 뉴라이트, 무속인들에 둘러싸인 대통령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도 매일 매일 드러나고 있다. 광장에서 마이크를 든 청소년들의 입에서는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2024~25년 겨울 광장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 비정규직 노동자, 발달장애인, 성소수자, 노래방 도우미, 이주노동자가 차별 없이 발언하고 연대했다. 트랙터를 끌고 온 농민과 시민들이 꼬박 밤을 새워 함께 뚫어낸 남태령은 동학 농민군의 피로 물들었던 130년 전 우금치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나눔과 연대의 승리였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에게도 시민들은 위로와 돌봄의 손길을 이어갔다. 시민들이 저마다 들고나온 깃발과 색색의 응원봉은 다양성의 가치가 광장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2024년 12월 4일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12월 14일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12월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소추안 통과, 12월 31일 법원의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체포 영장 발부는 시민의 승리다. 내란 우두머리와 내란범들의 구속,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과 대통령 파면, 조기 대통령선거 실시와 헌법개정으로 시민들이 더 큰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한다.
사법부 배심제와 더불어 입법 배심원제라고 할 수 있는 시민의회를 도입해 시민들이 직접 주요 국가 현안과 지역 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과 북미에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몇 차례 시도해온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같은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해 ‘숙의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킨 모델이다.
시민의회를 입법화하는 것도 시민의 힘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겠지만 시민들이 지역의 주요 현안을 두고 전문가와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토론을 벌이는 ‘공론 마당’을 일상화하는 것 만큼 효과적이지는 않다. 울산저널이 정책과비전포럼과 함께 2023년부터 계속해온 화요 토론이 그것이다. ‘시민이 만드는 지역 의제-공론 마당 화요 토론’은 2024년 지역신문 컨퍼런스 우수도전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25년에는 노동, 교육, 문화예술관광체육, 복지 사회서비스, 보건의료, 산업 경제 스타트업, 생태환경 에너지, 사회혁신, 도시관리 교통, 거버넌스 등 10개 분야별로 10회씩 100회의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2025년 화목 토론이 일상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제7공화국을 설계하는 시민들의 공론화 역량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이종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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