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2024-12-18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국회 일정을 마치고 익산 일정을 소화했던 날이었다. 귀가했는데 보좌관의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TV를 켜니 믿을 수 없는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길로 집을 나서 기차에 올라탔다.

이미 국회 앞에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시민들로 가득했고,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모든 출입문이 막혀있었고 넘을 수 있을 만한 담들도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갈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45년 만이며, 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이후에도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지켰고, 보좌진들은 본회의장 밖 로텐더홀을 지켰다. 국회 의결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안 비상계엄을 해제하지 않았고, 2차 비상계엄의 우려도 있었다. 그렇게 탄핵안이 통과된 14일까지 국회를 지키는 생활을 이어갔다.

의원들이 국회 안을 지켰다면, 밖을 지킨 건 시민들이었다. 계엄 선포 당일 시민들은 국회로 진입하려는 무장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탄핵을 외치며 차디찬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다양한 세대 만큼이나 다양한 깃발과 응원봉이 등장했다. 때로는 민중가요가, 또 때로는 K팝이 울려 퍼졌다. 서로서로 핫팩이나 간식거리를 나눴고, 시위참가자들을 위해 식당과 카페에 선결제해놓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축제 같았다, 민주주의 축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었지만, 시민들은 놀라운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줬다. 위대한 시민들과 그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대통령이 공존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다. 시민들은 대통령 파면을 명령했고, 국회에 이어 이제 헌법재판소가 답할 차례다.

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에 이어 이번에도 탄핵소추위원을 맡았다. 시민의 준엄한 명령을 잘 받들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냉정하고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탄핵이 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한 가지 물음이 있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다음에도 막아낼 수 있을까? 이번엔 허술했지만, 다음에 더 철저한 계획과 준비 하에 계엄선포가 이뤄진다면 막을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이번과 같은 사태를 일으키지 않기만을 바랄 수도 없다.

우리가 완전하다고 믿어왔던 민주주의, 87년 체제의 허점과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87년 체제는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만들어진 민주 헌정체제이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도입했고, 이 헌법에 기반해 집권세력을 창출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운영돼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리인인 대통령이 주인인 시민의 뜻을 따르지 않거나, 헌법과 법질서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이 내포돼있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 것인가. 침범받지 않고, 침탈당하지 않을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인가.

‘한국에서 12년 교육을 받으면 과연 민주주의자가 될까? 파시스트가 될까?’ 한 교수의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 우월한 자가 지배하는 것을 당연한 질서로 만드는 사회…그 결과가 낳은 것이 ‘윤석열’이라는 괴물은 아닐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정치의 민주화를 넘어 일상의 민주화까지 이뤄내야 시민들이 행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논의를 시민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려 한다.

이춘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익산시갑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주주의 #계엄선포 #헌법 #재판소

기고 gigo@jjan.kr

다른기사보기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