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내복, 장갑, 목도리, 깔판 등 장비를 단단히 준비한 채 여의도로 떠났다.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 투표가 있던 지난 14일. 택시에서 내리기 전 70대 기사님의 “그놈 잡으면 실컷 두들겨 패주세요”라는 말이 더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예상대로 여의도로 가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지하철을 타기도 쉽지 않았고, 내려서 역을 빠져나오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이 운집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당시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김대중 후보 연설회 때 100만 군중을 본 이래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 적이 없다. 무대와 연단은 고사하고 스크린마저 보이지 않는 도로와 인도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그러나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았다. 오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구호와 음악에 맞춰 각종 응원봉과 촛불을 흔들어 대며 한 마음이 되었다. 무대가 보이지 않아도 관계없다. 앉고 서 있는 자리가 바로 무대였다. 현장은 비장하면서 동시에 축제 분위기였다. 성, 나이, 지역과 계층 구분 없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었다. 윤석열이 통합의 기수가 된 셈이다.
“가 이백 네 표.” 우원식 국회의장이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여의도 탄핵 광장에 천지가 진동하는 환성이 터졌다. 마치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가 골을 터뜨린 순간의 함성처럼. 초조하게 졸이던 가슴이 엄청난 기쁨으로 폭발하면서 옆 사람을 껴안고 일제히 소리를 질러댔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11일간 계속되었던 뜬금없는 비상계엄의 트라우마가 일거에 날아가는 듯했다. 전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은 아예 포기하고,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인파 속에 묻혀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며 기나긴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도대체 윤석열이란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과대망상, 피해망상, 편집증으로 가득한 광기의 대통령이 K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감히 쿠데타를 꿈꾸다니. 그러고 나서도 진정한 사과 없이 국민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는 저런 인간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제도와 정치문화가 아쉽다. 우리는 정신 치료가 단단히 필요한 악마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국민께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판에 내란 수괴 윤석열을 끝까지 보호하고 정권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윤석열은 경험과 준비 없이 별의 순간을 잡은 것이 문제였다. 벼락출세로 개인적으로는 생의 정점을 찍었지만, 국가적으로는 큰 불행이 되었다. 윤석열은 검사, 검찰총장, 대통령을 거치면서 권력중독 증세가 악화했다. <승자의 뇌> 저자인 이언 로버트슨 교수에 의하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코카인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한다. 자기애에 빠지고, 오만해지며, 권력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된단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공감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져 오직 목표 달성을 위해 돌진하게 된다고 한다. 윤석열이 딱 그랬다.
언젠가 유승민은 윤석열에게 “권력의 칼춤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간다"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권력의 칼을 허투루 휘두른 장님 무사 윤석열은 자신의 칼춤에 찔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한때는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대가 국가와 국민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더 이상 구차하게 굴지 말고 모든 걸 내려놓고 국민의 명령을 받기 바란다. 지난 11월 28일 천주교 사제들은 시국 선언문에서 이렇게 꾸짖었다. 사람이 어째서 그 모양인가.
권혁남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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