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장사꾼 임상옥은 외교사절을 따라 청나라에 인삼을 팔러 갔다. 청나라 상인들은 인삼 경작, 운송 등 소요비용을 예측해 최저가격 아니면 사지 않기로 담합했다. 임상옥은 귀국 전날 팔리지 않는 인삼을 모아 불을 질렀다. 청나라 상인들이 깜짝 놀라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가격은 치솟았고 그제야 불을 껐다. 그의 무모함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인삼은 대체불가 최고상품이다. 담합을 미리 파악한 정보력과 분석력이 있었다. 일부 상인을 매수해 인삼을 태울 때 가격을 올리는 등 담합을 깨는 역할을 맡기지 않았을까. '인삼 불태우기'라는 극단적 행위예술을 통해 청나라 상인들의 전략을 와해시켰다. 통쾌하기 그지없다.
임상옥의 기괴함을 스티브 잡스,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젠슨 황에게서 본다. 발음도 어려운 바다 건너 기업가의 이름을 외치며 칭송한다. 우리나라엔 왜 그런 기업가가 없는가. 회사를 세운다고 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한다. 사고와 행동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숨어있거나 존재하지 않는 경제자원을 발견하거나 발명한다. 생산성과 생산량이 높은 곳으로 경제자원을 옮긴다. 기존 시스템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해결한다. 전형적인 시장에서 비전형적인 가치를 찾아내 결단하고 실행한다. 불확실한 상황을 즐기고 기회를 찾아 정상적인 시장을 무너뜨린다. 창의와 혁신을 일으키고 수익과 가치를 창출하는 역동적 과정을 주도하고 시스템을 움직인다. 예측 불허의 행동을 통해 당연함을 넘어 가치 있는 변화를 창출한다.
우리는 어떤가. 기업가정신이 죽고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엔 건설, 중화학, 철강, 자동차, 통신 등 새로 할 일이 많았다. 법령은 느슨했고 정치는 경제에 양보했다. 지금은 어떤가. 민주화에 따라 법령과 규제가 정비되고 많아졌다. 규제를 뛰어넘는 상품을 만들지 못한다. 주주, 직원, 고객, 시민 등 이해관계자가 기업에 강한 책임을 요구한다. 기업가정신은 위축되고 유리천장에 갇히고 말았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즉시 실행하지 못한다. 법률 리스크가 있을까 두렵다. 정부가 진흥책과 법령을 쏟아내며 예산을 투입하지만 창의와 혁신의 불쏘시개가 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엔 기업가정신도 달라야 한다. 도전, 근면, 성실은 기업가정신의 고전이지만 그것만으로 이룰 것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합리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합리성은 지식과 논리, 경험에 의한 규칙에 따른다. 그러나 새로움은 과거의 규칙에서 나오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원자 단계에서 기존의 물리학을 부정했기에 가능했다. 비합리성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뜬금없고 황당함에서 창의가 나온다. 효율성도 다시 보자. 투입 대비 산출의 능률을 따지고 목표를 달성했는 지 효과를 따진다. 자본과 기술은 사람보다 효율적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배치할 지 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효율성의 이름으로 빈틈을 없애면 그 속에서 자라야할 사람의 창의와 혁신이 죽는다. 농업을 발전시킨 것은 농사를 짓는 사람보다 농기구와 농업기술을 개발한 잉여인력이다. 토마스 에디슨은 달걀을 품어 부화시키는 비효율적인 짓을 했지만 그 시공간에서 발명가의 싹이 자랐다. 정상적 에너지를 써선 정상적 결과만 나온다. 기발하고 독창적이려면 규칙과 관념이 정한 경계를 넘어 비정상적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래야 법령과 규제를 뛰어넘는 탁월한 상품이 나온다.
스페이스X는 로켓을 발사한 뒤 공중에 떨어지는 로켓추진체를 다시 낚아채 재활용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기가 막힌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면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런 기업가가 없다면 상투적 진흥책은 답이 아니다. 그럴듯한 아이디어엔 미래가 없다. 황당함, 특이함, 뜬금없음을 받아들이고 기다릴 줄 아는 '너그러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