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SOLO’ 22기 옥순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리얼리티쇼의 은밀한 공모

2024-10-02

한국 리얼리티쇼의 역사는 ‘빌런’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 예능의 주도권을 지상파에서 CJ E&M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서바이벌로 옮기며 패러다임을 바꿨던 Mnet <슈퍼스타 K 2>는 본인을 위해 팀을 옮긴 김그림의 행동이 논란이 되며 화제성과 시청률이 급상승했으며, 시즌 3 역시 같은 성공 공식을 반복하며 예리밴드와 신지수 등이 이기적인 캐릭터로 부각됐고 예리밴드가 ‘악마의 편집’에 항의하며 합숙소를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온스타일의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는 매 시즌 악녀 마케팅으로 재미를 보았고,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 올리브TV <마스터 셰프 코리아>도 시즌마다 경쟁자와 시청자의 뒷목을 잡게 하는 출연자들이 갈등의 중심에 섰다. 서바이벌 장르만의 문제가 아니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선 많은 자영업자들이 실력에 반비례하는 강한 고집을 부리다가 백종원에게 혼쭐나고 방송 외적으로도 대중의 공적이 되는 일이 반복됐다. ‘빌런’이란 표현도 그때부터 보편적으로 사용됐다. 하여 최근 방영 중인 ENA <나는 SOLO> ‘돌싱 특집’ 22기 옥순이 방송 안에서 이번 기수의 빌런으로 떠오르고 방송 바깥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해 해명문을 올리는 상황은 새삼스럽고도 처참하다. 근래 리얼리티쇼 중 빌런 캐릭터를 가장 효율적으로 써먹는 게 <나는 SOLO>기도 하지만, <슈퍼스타 K 2> 이후 십 수 년이 지났음에도 리얼리티라는 명목으로 출연자의 삶 일부가 구경거리가 되어 방송 안에서의 갈등이 방송 바깥의 도덕성 논란으로 연결되는 일이 벌어지고 여전히 이에 대해 공유된 문제의식은 없다. 어떤 반복은 제자리걸음이 아닌 퇴행의 누적이다.

이번 22기 <나는 SOLO>에서 옥순이 자신을 호감도 1순위로 선택한 경수를 추궁하는 장면을 보며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본인의 착각으로 서로의 만남이 엇갈린 것은 그저 오해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 경수의 행동에만 책임을 묻는 화법은 피로하고 어른스럽지도 않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나는 SOLO>는 공간과 관계의 통제를 통해 출연자의 사고를 협소하게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리석은 행동을 하도록 설계된 세계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인간의 본질에 대해 딱히 얘기해주는 것이 없다. 옥순과 경수의 대화를 근거로 옥순이란 개인에게 내릴 수 있는 최악의 평가는 ‘연애하기 피곤한 타입’ 정도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도 아니고, 친구로 지낼 수 없는 사람도 아니며, 내가 공공연히 비난해도 될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해당 회차와 함께 옥순은 이번 기수의 빌런으로 점 찍혔다. 국제신문은 ‘22기 옥순 빌런 등극?’, 텐아시아는 ‘22기 옥순 쌈박질하러 나왔나’, 앳스타일은 ‘22기 옥순 숨겨진 빌런이었나’ 등의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로 군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를 향한 도 넘은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9월 29일 옥순은 본인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먹튀 당할만하다’, ‘아기 버린 전 남친이 승자’, ‘저 모양이니 미혼모’ 같은 비난을 받았으며 “미혼모라는 말을 제가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에 글을 남기게 되었다”고 밝혔다. 저열한 인신공격에 대한 옥순의 차분하고도 논리적인 해명문은 방송 속 그의 모습이란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를 반증한다.

옥순의 해명문과 그걸 열심히 퍼 나른 연예매체 보도를 통해 그에 대한 마타도어가 수그러든다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나는 SOLO> 다음 기수에서, 다른 리얼리티쇼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어떻게 해도 박멸할 수 없는 일부 악플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SOLO>를 연출하는 남규홍 PD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악플은 무시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 여러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언젠가 지나간다는 말로 위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건강한 반응과 피드백이 늘어난다면 출연자들의 고통은 덜겠지만 사라질 수는 없다. 실은 쇼를 통해 “여러분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이 상황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아무개의 삶이 엔터테인먼트의 대상이 된다는 것. 리얼리티쇼의 쾌감은 합법적이고 당당한 관음에 있다. 시청자는 관심을, 방송은 출연자의 내밀한 삶(처럼 보이는 것)을 서로 교환한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로서의 시청자는 언제나 갑이지만, 이 거래에 있어서는 더더욱 갑이다. 제품이 진품이라는 제작진의 보증서는 콘텐츠를 보고 자연인으로서의 출연자에 대해 평가해도 된다는 시청자 권리까지 보증해준다. <나는 SOLO>를 비롯해 그 어떤 리얼리티쇼도 온전히 사실이자 진실일 수 없으며 실은 시청자도 안다. 단지 타인의 진짜 삶을 엿본다는 관음의 쾌감과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보증서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니 리얼리티쇼에서 빌런은 우연히 등장한 부산물이 아니다. 빌런을 제물로 바쳐 그에 대한 징벌 혹은 용서의 권리를 시청자의 몫으로 배분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리얼리티쇼에서 리얼리티라는 환상을 지탱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검증된 방식이다.

반복되는 빌런 소비 속에서도 이번 <나는 SOLO> 옥순이 빌런이 되어 일부 대중에게 부당한 비난을 받는 과정이 특히 의미심장한 건, 약자 혐오와 타자 혐오의 양상이 더는 숨길 수 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악플러들이 유독 미혼모라는 지위를 공격하고 훼손한 건 우연이 아니다. 정상가족이란 범주를 기준으로 미혼모를 당사자의 잘못 때문에 닿은 잘못된 결과인양 무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배제를 통한 권력의 행사다. 관음을 통한 시각적 통제의 쾌감은 누군가의 실제 삶을 모욕해 내 삶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이번 기수의 순자가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것 역시 정상성에 대한 집착과 여성 신체에 대한 통제의 욕망을 너무나 잘 드러낸다. 물론 굳이 악의적인 인신공격을 하는 악플러와 그저 프로그램을 보며 혀를 끌끌 차거나 팝콘을 씹으며 구경하는 다수 시청자를 동일하게 놓을 수는 없다. 다만 언론과 커뮤니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인물에 대한 프로파일링이나 밈의 생산, 목격한 ‘썰’ 등이 난무하는 담론의 증식이 이 거대한 통제와 배제를 가능케 한다는 걸 지적하려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인터뷰에서 남규홍 PD는 “누구든 <나는 SOLO> 같은 특수한 상황에 놓이면 이른바 빌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온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빌런은 행위 그 자체로서 빌런이 되는 게 아니다. 행위를 잘게 쪼개 해석하고 재해석하고 부연하고 배제하는 언어들을 통해 비로소 빌런으로 재구성된다.

이 칼럼을 쓰는 현재(10월1일 기준), ‘22기 옥순’으로 검색하면 다음날 방영할 <나는 SOLO>의 프리뷰를 겸한 연예기사 다수에서 ‘옥순 오열, “내가 미쳤나봐”’라는 타이틀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어제까진 옥순이 받은 악플과 그의 해명을 요약한 기사가 쏟아졌지만, 단 하루 사이 마치 어제 일은 없던 게 된 것처럼. 방송사 측은 자극성을 강조한 보도자료를 뿌리고,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연속적이고 반성적인 맥락을 구성할 생각 없는 매체들은 경마식 보도를 하며, 옥순을 비롯한 쇼의 출연자들은 총체적이고 복잡한 한 인간이 아닌 짧고 선정적인 해프닝의 대상으로 쪼개지고 파편화되어 딱 씹고 뜯기 좋은 상태가 된다. 바로 어제 매체들이 앞 다퉈 보도한 옥순의 악플 경험이야말로 이러한 공모를 통해 발아하고 유지되며 정당화되는 중이다. 가령 OSEN은 ‘나는 솔로, 조회수+시청률 뽑아먹고 팽?’이라는 타이틀로 비연예인 출연자에 대한 비난을 방치하는 제작진을 비판했지만, 정작 같은 매체 같은 기자는 그로부터 4일 전 프로그램을 리뷰하며 ‘‘자뻑’ 영숙, ‘공주병’ 옥순 대환장’이란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타이틀로 조회수를 챙겼다. 출연자들을 ‘팽(烹)’하는 건 매일반이다. 아무런 반성도 성장도 없이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 공주병이든 오열을 했든, 현재 미성숙하다는 비판을 받아야 할 건 옥순이 아니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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