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쓰이금속이 최근 동박 가격을 인상하면서 국내 인쇄회로기판(PCB) 업계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미쓰이금속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
1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솔루스첨단소재 등에 샘플 주문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복수의 국내 PCB 업체들이 반도체 패키징용 동박 거래를 타진 중으로, 구체적인 사양을 제시하면서 논의를 진척하고 있다.
동박 업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패키지용 동박을 찾는 문의가 많아 샘플 공급을 위해 고객사와 논의하고 있다”며 “PCB 업체의 미팅 요청도 늘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PCB 제조사들이 롯데와 솔루스 등 국산 동박으로 눈을 돌리는 건 미쓰이금속의 가격 인상 영향이다. 미쓰이금속은 최근 반도체 패키지용 동박 가격을 10% 인상했다. 〈본지 11월 14일자 1면 참조〉
업계에서는 미쓰이금속이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가격을 올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쓰이금속은 반도체 패키지용 동박적층판(CCL)에 들어가는 동박 분야에서 9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CCL은 동박을 적층해 제조하고, 이 CCL을 활용해 PCB가 만들어진다. 이같은 산업 구조에서 핵심 소재인 동박 가격 인상은 PCB 제조사의 수익성 악화 요인이 된다. 이에 PCB 업체들이 동박 신규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쓰이금속이 2년 전에도 판가를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10%를 또 인상하면서 CCL과 PCB 업계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이번에 미쓰이금속 독과점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고,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동박 제조사들은 이번 기회를 판로 확대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솔루스첨단소재는 반도체 패키지용 동박을 생산하고 있지만, 미쓰이금속에 밀려 물량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에서 초미세 회로 패턴 구현을 위해 필수적인 1~5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초극박 동박 라인업을 보유했다. PCB 업체로 공급을 추진, 내년에는 반도체 패키지용 초극박 동박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솔루스첨단소재도 초극박 제품 개발을 완료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동박 성능 테스트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점이 국내 동박 업계에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