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축구협회 김대은 전 회장, 제2의 인생 항로 개척
축구 선수로서, 행정가로서 지난 50년 가까이 전북 축구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던 전북특별자치도축구협회 김대은 전 회장이 최근 일선에서 물러나 제2의 인생 항로 개척에 나섰다.
지난 1979년 군산제일중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김 전 회장은 군산제일고와 광운대학교를 거쳐 목포 항운실업팀까지 12년 동안 엘리트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1991년 전북축구협회 평직원으로 입사해 사무국장(1996년)과 전무이사(2002년)로 재직하면서 전북 축구계의 원로인 고 최공엽 회장과 김문철 회장, 유창희 회장 등 3명의 회장을 보좌하며 전북 축구 발전에 기여해왔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0부터 2012년까지 회장 대행으로 일했고 지난 2013년 전북축구협회 제21대 회장으로 선출돼 22대와 23대 회장까지 역임했다.
회장 재임 기간중에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선수 생활 12년에 축구 행정가로서 34년, 김대은 전 회장의 축구 인생은 반백년에 가까운 46년에 달한다.
전북 축구계의 선장으로서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세월을 뒤로하며 최근 일선에서 물러난 김 전 회장은 지난 46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망설임없이 지난 2005년 동아시아 축구대회 당시 남북 남녀 대표팀 경기가 같은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 유치했던 순간을 꼽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국제경기가 없었던 전주월드컵경기장에 남북한 남녀 대표팀 경기가 유치된데는 대한축구협회에 끊임없이 건의했던 김 전 회장의 노력이 한 몫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이다.
김대은 전 회장은 “당시 한국 여자 대표팀이 북한을 상대로 1대0 승리를 거뒀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그때 승리가 한국 여자 대표팀이 북한 여자 축구에 거둔 최초의 승리이자 마지막 승리였다”고 회상했다.
김 전 회장은 “그 당시 남북 축구 대표팀의 경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고 자연스럽게 전주도 축구도시로 각인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의 두 번째 기억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서 열렸던 ‘2018 러시아 월드컵’ 국가대표팀 출정식이 자리잡고 있다.
전북축구협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인데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출정식을 유치했던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세 번째 기억으로는 유소년 선수들의 기본기와 기술력 향상을 위해 8대8 축구를 시범사업으로 도입(2017년)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 1992년 1월 승인받아 출범시킨 금석배 전국 축구대회가 현재 전국 최대 규모의 대회로 성장한 것도 김 전 회장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금석배가 출범하던 90년대 초반에는 전국대회가 5개 뿐이었고 그 마저도 개최지역이 전부 영남권에 편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석배 전국 축구대회는 군산 출신으로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고 채금석 선생의 업적을 축구 후배들에게 알리고 나아가 전국 최초로 축구 선수 이름을 딴 대회로서 전국 최대 규모 대회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인생의 2/3 이상을 축구화 함께 살아온 김대은 전 회장에게도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적지 않다.
그중 가장 미련이 남는 것은 전북 축구 발전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직장배 축구대회를 활성화 시키지 못했던 일이다.
지금도 프로에 진출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소수만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
김 전 회장은 축구 선수출신들이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직장배 축구대회를 추진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대은 전 회장은 “축구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했기에 후배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위해 새로운 인생의 길을 터주고 싶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전 회장은 “이제 정들었던 축구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만 항상 마음만은 전북 축구와 함께 할 것이다”면서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가 전북 축구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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