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의 진군, 한계는 없다 [여군 병과 전면 개방 10년 ‘여풍당당’]

2024-10-04

SPECIAL REPORT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의 목소리엔 힘이 넘쳤다. 지난달 26일 전쟁기념관을 찾은 제281시험비행대대 소속 정다정(38) 소령은 KT-1 기본훈련기가 눈에 띄자 “초임 장교 시절 비행 훈련하러 종종 탔다”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임관 후 15년이 지난 지금 정 소령은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인 KF-21 개발시험비행조종사에 여군 최초로 선발돼 활약 중이다. 2026년 실전 배치를 앞두고 시제기의 각종 테스트를 책임지는 개발시험비행조종사는 현재 정 소령 등 공군 최정예 조종사 8명이 맡고 있다. 그는 “여군이 아닌 대한민국 공군이란 자부심이 있을 뿐”이라며 “하늘에 경계가 없듯 국방에도 한계는 없다”고 각오를 다졌다.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여풍이 거세다. 현재 장교와 부사관 등 여군 간부는 1만9200명에 달한다. 전군 간부 중 여군 비율도 10.8%로 창군 이래 처음 10%를 넘어섰다. 줄곧 1500명 수준을 유지하던 여군은 1997~99년 육·해·공군사관학교가 여생도를 받아들이면서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2017년 육사 73기 졸업식 때는 육사 최초로 1~3등을 여생도가 휩쓸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기에 2014년 육·해·공군이 모든 병과를 여군에 전면 개방한 게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이후 10년간 여군은 전방의 야전 포대장과 GOP(일반전초) 대대장을 비롯해 해군 함장과 전투비행대대장까지 ‘금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병과에 잇따라 도전장을 내밀며 ‘여군 최초’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전방과 오지 등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여군도 2018년 603명에서 올해 1871명으로 6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

국군 내 여풍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국방부도 2027년엔 여군 비율이 15.3%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군 어린이집 확대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여군 근무 환경 개선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국토방위라는 대의 앞에 성별 구분은 없다”는 정 소령의 다짐처럼 오늘도 여군은 전투기를 타고, 탱크를 몰고, 고속함정을 진두지휘하며 전장의 최일선에서 대한민국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

함장·GOP대대장 맹활약

올해 첫 여군 잠수함 승조원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국군 내에서는 ‘여군 무용론’이 대세였다. ‘여군의 신체 특성상 전투 임무가 제한돼 활용도가 떨어지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1970년대엔 여군을 별도 조직인 여군단으로 관리해 주요 보직 진출에 한계를 두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방 분야 여성 인력 확대 방안’ 연구를 지시하면서 여군에 대한 시각이 단순 보조 역할에서 핵심 병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여군이 증가한 건 그만큼 배출 창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육군사관학교(1998년)와 해군사관학교(1999년)가 잇따라 여생도를 받아들였다. 2001년엔 해·공군에서 여군 학사장교가 임관했고 2010년엔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 선발도 시작했다. 박지연(45) 대령도 1997년 공사 첫 여생도 20명 중 한 명이다. 2001년 임관 후 첫 여군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한 데 이어 여군 최초로 전투비행대장(2017년)과 전투비행대대장(2019년)을 맡는 등 보직마다 ‘여군 최초’의 역사를 새로 썼다. 총 비행시간만 1900시간이 넘는다.

박 대령은 “전투기 조종사의 비상대기 출격을 위한 이륙 요구 시간이 8분 이내여서 1년 365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보직”이라면서도 “20년 넘게 조종사로 활동하며 여성이라 장벽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도 시절엔 오히려 남자 생도가 역차별을 느낄 정도로 많은 배려를 받았다. 훈련도 딸을 둔 교관이 특별히 배치돼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며 “돌이켜 보면 그런 관심이 더 열심히 노력하는 좋은 기제로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공사 동기생과 결혼한 박 대령은 최초의 전투기 조종사 부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해군의 전투병과 진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3년 여군 장교가 처음 해군 전투함에 배치된 데 이어 2017년엔 첫 여군 함장이 배출됐다. 현재 해군에선 13명의 여군이 해상지휘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군 1함대사령부 김수현함 함장인 박지성(34) 소령도 그중 한 명이다. 김수현함은 450t급 유도탄 고속함으로 2014년 취역해 동해 해상 경계와 북한 상선 대응 임무를 수행한다. 박 소령은 지난 7월 김수현함 9대 함장으로 취임해 50여 명의 승조원을 이끌고 있다. 승조원 중 유일한 여군이기도 하다.

2012년 소위로 임관한 박 소령은 청해부대 파병도 두 차례 다녀왔다. 생도 시절만 해도 배멀미로 고생했다는 그는 “‘우리의 생명선은 바다에 있다’는 선배들 말이 가슴을 울렸고, 함정 근무야말로 대한민국을 최전선에서 지키는 일이다 싶어 지원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군함의 지휘관인 함장은 승조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박 소령은 “전방 해역에선 항상 적과 대치하고 있어 전투가 벌어지면 단 1초의 차이로 승패가 갈릴 수 있다”며 “적이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발 즉시 강력하게 응징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해군은 잠수함을 도입한 지 31년 만인 올해 첫 여군 잠수함 승조원도 배출했다. 잠수함은 군내 유일하게 남은 여군 미보직 직위였다. 현재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과 안무함에 9명의 여군이 승선해 있다.

육군도 병과 전면 개방 이후 보병·포병대대나 비무장지대(DMZ) 등 전방에서 부대를 지휘하는 여군 간부의 활약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육군 제22보병사단 포병여단에서 근무 중인 황희정(33) 소령(진급 예정)도 2022년 10월 북한이 동해에서 포격 도발해 왔을 때 전선의 최북단 방어를 담당하는 포병여단 작전장교로 활약했다. 황 소령은 “화력 대기 태세가 격상되고 즉각 사격을 준비하던 그날의 긴장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이 계속될 때마다 모든 동료가 하나가 되면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여군이 전투병과에 근무하는 데 대해 우려의 시선을 느낄 때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전투병과, 특히 포병 장교라고 하면 ‘포탄을 들 힘이나 있느냐’는 비난 섞인 말도 듣곤 했는데, 포병이 단순히 포탄을 들고 사격하는 임무만 수행하는 건 아니다. 사실화력을 이용한 작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어느 병과보다 치밀하고 꼼꼼한 대비 태세가 요구되는 게 포병이다. 그런 점에서 남자 군인에 비해 물리적 힘은 부족하더라도 여군 특유의 섬세함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전쟁 양상이 기술전으로 변화하고 무기도 현대화되면서 더 이상 신체 조건이 절대적 변수가 아닌 점도 한몫하고 있다.

황 소령은 현재 임신 5개월째인 ‘예비 엄마’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단다. 그는 “포탄 사격도 나가야 하고 전방 점검도 해야 하는데 임신한 몸으로 버틸 수 있을지 우려가 됐지만 기우에 불과했다”며 “먼저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아빠 선배들 도움도 많이 받았고, 여군이 늘면서 임신한 여군을 위한 각종 제도가 잘 갖춰지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육·해·공을 막론하고 이들 여군은 “군인으로 겪는 어려움은 있어도 여군이라 힘든 점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군이 추진하는 양성평등 정책이 대부분 육아나 보육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보완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군이 태생적으로 남성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다 보니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도 극복 과제 중 하나다.

이현지 한국국방연구원 인력정책연구실장은 “청년 인구 절벽에 따른 병역 자원의 급격한 감소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등 최근의 사회 흐름을 감안할 때 여군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대적인 시설 개선은 물론 남녀 군인이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인사 제도와 군 내부 문화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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