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진두지휘한 APEC 외교 주간이 마무리됐다. 여당에선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이재명" "외교 천재 이재명"이란 칭송이 쏟아졌다. 노골적이고 낯뜨거운 찬사에 적응이 어렵지만 성과가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전격적인 핵 추진 잠수함 연료 제공 요청과 트럼프의 건조 승인, 한·미 관세 협상 타결, 무난한 한·중, 한·일 관계 빌드업이 키워드들이다. 그러나 관객들을 매료시킨 신스틸러는 따로 있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깐부치킨 치맥 회동이다. 개인 재산 합계가 225조원이라는 AI(인공지능) 깐부 세 사람이 2만원대 순살 치킨과 소맥으로 만들어낸 퍼포먼스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황 CEO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대기업 총수 둘의 자유분방하고 소탈한 모습은 "AI가 만든 가짜 영상 아니냐"는 얘기가 돌 만큼 긍정적 의미에서 비현실적이었다. "너무 훈훈해서 '부자 되라'는 덕담을 하고 싶었는데, 이미 엄청난 부자들이라 할 수가 없었다"는 댓글에 공감이 폭발했다. 이 회장의 치킨 발골 영상엔 "대충 발라 먹던 사람들 반성해야지. 애들 조기교육 필수 영상"이란 반응도 나왔다. 깐부치킨이 모든 동네에서 동이 나고, '젠슨 황 메뉴'가 인기몰이 중이다.

황 CEO와 의기투합한 대기업 총수들의 모습이 유난히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 건 지난 윤석열 정권에서 끊이지 않았던 관제 동원 논란과의 대비 효과란 분석도 있다. 당시엔 해외 순방 때 대통령 주재 술자리에서 괴롭힘을 당한 대기업 인사들 목격담이 공공연하게 새 나왔다. 정점은 2023년 12월 '부산 떡볶이 먹방 병풍' 사건이다. 엑스포 유치 불발 일주일 만에 부산을 방문한 당시 윤 대통령이 깡통시장 분식집에서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었다. 당시 "엑스포 유치 실패 민심 달래기를 위해 대기업 회장들을 병풍으로 세웠다"는 비판이 쇄도하며 파장이 일었다. 특히 국민의힘 계열 정당을 꾸준히 지지해온 시장친화적이고 합리적인 중도 보수층의 이탈이 확연했다. 이렇게 기울어진 민심의 운동장은 이듬해 총선에서 여권에 역사적인 참패를 안겼다. 요즘 특검 수사를 통해 김건희 여사의 경복궁 근정전 용상 착석 사건 등이 확인되면서 떡볶이 강제 먹방 사건 같은 일이 왜 벌어졌는지 국민 모두가 알 수 있게 됐다. SNS엔 윤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대기업 총수들의 어두워 보이는 표정과 현 정권 출범 이후 밝아진 얼굴을 대비시키는 동영상이나 사진들이 돌고 있다. 과연 실제로 그들이 행복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깐부 치맥 회동'을 지켜본 민심은 그렇게 흐르고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치맥 회동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가 한국 정부와 기업에 공급하겠다는 26만 장의 AI 개발용 GPU(그래픽 처리 장치) 덕분에 이 대통령의 AI 드라이브는 날개를 달게 됐다.
깐부 치맥에 올라탄 APEC 성공
이제 난제들 즐비한 내치의 시간
여당 폭주와 부동산 민심 관리를
젠슨 황의 마법이 춤췄던 APEC 주간은 마무리됐다. 정국은 차가운 국내 정치의 현실로 돌아왔다. 외교와 AI에서 기세를 올린 이 대통령은 부담스러운 내치의 숙제들과 마주해야 한다. 내치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더 엄격한 법이다. 국정감사는 '최민희·추미애·김현지 국감'이란 오명 속에 막을 내렸다. '사법 개혁'과 '국정 안정' 등으로 포장된 민주당의 입법 폭주도 우려스럽다. 부동산 대책의 후폭풍과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스캔들도 정권엔 짐이다. 난제들을 잘 다루지 못하면 변덕스러운 민심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지난 5월 대선 당시 경남 유세에서 이재명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어록이라며 이런 말을 했다. "정치는 말이야 우리가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가만히 있으면 상대방이 자빠진다. 그러면 우리가 이기는 거야." 맞는 말이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 기회와 위기는 한 장 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