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40.8% 득표율로 서울 서부권 4년제 대학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A씨(23)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서울 주요 대학가에서는 총학생회 선거가 마무리된 현재까지 절반에 가까운 학교가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권처럼 대학가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가 만연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7일 중앙일보가 서울 소재 4년제 종합대학 총학생회 구성 현황을 조사한 결과 33곳 중 19곳만 총학생회가 꾸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낮은 투표율로 개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아예 출마한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된 상황이다.
서울대·고려대·서울시립대·한국외대·숙명여대 등은 입후보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됐다. 한양대는 전체 유권자 대비 찬성률 기준(33.3%)을 충족하지 못했다. 서울과학기술대는 개표할 수 있는 최소 득표율(40%)에 미치지 못해 당선자가 없었다. 이런 학교들은 향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A씨는 “우리 학교는 외국인 유학생도 투표권이 있어서 정기적 소통 협의체 구성, ‘학잠(학과 점퍼)’ 공동구매 등 유학생 겨냥 공약을 내고 홍보에 공을 들였다”며 “일반 학생들은 선거 기간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학 후보자는 동아리 활동도 중단해야 하는 등 사적 만남 제한 규정이 있어 입후보 자체를 꺼리는 학생도 많다”고 했다.
비대위는 총학생회보다 대표성이 없어 학생 사업 추진, 예산 집행 등에 제약이 따른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누리는 복지 혜택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A씨는 “누가 비대위원장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불확실성에 따른 피해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입는다”고 강조했다.
무색·무취 대학가…“재학 중 한 번도 총학 투표 안 해”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무색·무취’해진 대학가 분위기가 꼽힌다. 과거엔 소위 ‘꿘(운동권)’과 비운동권 학생으로 갈리며 정파적 구도가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 피로감과 무관심이 확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축제 운영 등에서 총학생회 비리가 불거지거나 탄핵 반대 집회 등을 주도해 논란이 된 사례(충북대 총학생회장)가 있는 만큼 총학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도 학생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요즘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취업”이라며 “정치 이슈에 관심이 적다 보니 총학 구성이 어려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4학년 김모(25)씨는 “재학 중에 한 번도 총학생회 투표를 해본 적이 없다”며 “정책이나 공약을 살펴봐도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느낀다”고 했다. 2학년 정모(22)씨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든, 총학이 꾸려지든 관심 자체가 없다 보니 체감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환경에 맞춰 총학 선출 방식을 손보거나 개표 기준을 현실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30년 전엔 등록금 투쟁 같은 학내 복지 이슈가 많았지만 이젠 학생들을 결집할 거시적 담론 등 동력 자체가 사라졌다”며 “어느 정도 지지를 받는 단과대나 학과 대표 기구가 총학생회장을 선출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투표율은 떨어지고 정당 비대위 체제가 장기화하는 한국 정치 모습과 판박이”라며 “대표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40~50% 정도의 개표 기준 투표율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사진] 주요 10개대 인문계 수시 탈락 19만명…정시에 쏠린 눈](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08/f69065f9-e16a-4c18-9832-716d69694ade.jpg)





![공공기관장 인사 배제…“전정권서 근무” 낙인도 [움츠러드는 경제관료]](https://newsimg.sedaily.com/2025/12/07/2H1N0THM5L_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