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쉬운 것만 하려고 하지 새로운 것을 개척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잖아요.”
태피스트리 작가 이신자는 올해 해외에서 큰 활약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아티스트 중 첫 손가락에 꼽힌다.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만난 이신자는 “과거에 비해 (태피스트리) 인구가 적어 명맥이 이어지기 쉽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다시 섬유 붐이 일고 재조명받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누구보다도 바쁜 한 해를 보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실로 그리다’를 진행한 이후 8월 미국 뉴욕의 티나킴 갤러리 개인전을 시작으로, 10월 영국 런던 프리즈에 작품을 출품했고, 12월에는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대규모 단독 부스를 꾸리기도 했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뿐 아니라 구겐하임, 영국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전시에 들러 이신자의 작품을 감상했고, 일부는 직접 작가의 서울 한남동 자택을 찾기도 했다. 다양한 해외 전시도 계획돼 있다. 올해 8월 작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UC버클리 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연다. 해당 전시에는 작가의 작품이 약 60점 걸린다. UC버클리미술관 전시 이후에도 미국내 다른 미술관에서 전시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작가는 “한국 자수를 다 망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혼자 여기까지 왔다”며 최근 뜨거운 관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국내에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신자는 한국 태피스트리의 거장이다. 태피스트리는 여러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는 직물 방식이다. 작가는 1970년대 해외 미술계를 직접 접한 후 스승도 한 명 없이 스스로 태피스트리를 시작했다. 그는 “모든 여성들이 바늘에 실을 꿰어내 남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자수를 했는데, 바늘을 내려놓고 좀 더 대담한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태피스트리를 시작한 계기를 말했다. ‘실로 그린 그림’.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이렇게 부른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다시 실로 그리기 때문이다. 소재 선택도 과감하다.
많은 당대 추상화가, 실험미술 작가들이 그렇듯 작가 역시 섬유 대신 밀 포대, 방충망, 벽지, 종이 등 일상의 소재를 캔버스 삼아 실을 꿰어냈고, 실이 없다면 입던 옷의 올을 풀어 직조에 활용하기도 했다. 작가는 “스승이 없으니 누구한테 배울 길이 없었고,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면서도 "그래서 더 자유로웠다”고 말했다.
1950~60년대 이화여대에 ‘자수과’가 있던 시절,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나와 직물을 전공한 이신자의 작품을 두고 ‘예술’이라고 말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자수를 망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묵묵히 태피스트리로 자신 만의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이신자의 작품은 ‘어떻게 이게 다 실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정교하다. 그의 대작 중 하나인 ‘한강, 서울의 맥’을 보면 누구라도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무려 5년 여에 걸쳐 제작된 해당 작품에는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한강의 물줄기에 따라 올림픽 주경기장, 63빌딩, 워커힐 등 서울의 다양한 랜드마크가 담겨있다. 이렇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대작을 만들다 보니, 작품이 많지는 않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가가 제작한 작품은 130여 점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최근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몇 점은 주요 미술관과 해외 큰 손 컬렉터들의 소장품이 되었다.
작가는 최근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지만 “작년까지도 작업을 했고, 올해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열의를 내비쳤다. 작가가 작업을 멈추면 국내에서는 태피스트리 예술의 명맥이 끊어질 수 있다. 그는 “태피스트리가 워낙 어려운 작업인 데다 비용도 많이 들다 보니 이를 배우려고 하는 이들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