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몽 융합의 건축 외교, 청더 외팔묘

2025-08-03

청나라의 강희제와 건륭제는 주변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외교에 힘을 쏟았다. 청더(承德) 피서산장 외곽에 건립한 ‘외팔묘(外八廟)’ 사찰들은 북방외교의 거점으로 건축을 중요한 외교 수단으로 활용했다.

중국 불교는 전통적인 교선현교(敎禪顯敎)의 한전(漢傳)불교와 밀교 계통의 장전(藏傳)불교로 나뉜다. 서장(西藏, 티베트)에서 전래한 장전불교는 원과 청의 황실불교가 되었다. 두 불교는 교리는 물론 건축형식도 다르다. 한전 가람은 평지에 좌우대칭으로 기와집들을 기하학적으로 배열하지만, 장전 가람은 경사지에 다층 벽식 건물들을 비대칭적으로 배열한다.

‘보타종승묘’는 달라이 라마 초청을 위해 기술자를 파견, 라싸의 포탈라궁을 연구 모방해 건립했다. ‘소(小)포탈라궁’으로 불릴 정도로 티베트 벽식 건물들이 수십 개 산재한 대규모 사찰이다. 6개 층의 붉은 대홍대 안에 3층의 중국식 전각을 숨겨 ‘외장내한(外藏內漢)’의 건축형식을 취했다. ‘보녕사’는 앞부분은 한전 가람, 뒷부분은 장전 가람인 ‘전한후장(前漢後藏)’이다. 6층 대승각에 봉안한 세계 최대 목조불인 천수관음보살상이 압도적이다. ‘보락사’는 몽골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지었다. 전체 배치는 전형적인 한전 가람이나, 중심인 욱광각은 2층 원형으로 몽골 게르를 모델로 건립했다. ‘전한후몽(前漢後蒙)’이라 하겠다.

1780년 건륭제는 칠순 잔치에 티베트의 2인자, 6대 판첸 라마를 초대했고 전용 공간인 ‘수미복수지묘’(사진)에서 접대했다. 판첸 라마의 거처인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을 모델로 해 전체는 장식 가람이나, 7층 만수유리탑 등 일부분은 한식인 ‘전장부한(全藏部漢)’이다. 같은 해 조선 사절단은 건륭제의 명으로 이곳의 판첸 라마를 만나게 된다. 성리학자가 승려에게 절할 수 없다고 버텨 황제의 눈 밖에 났다. 결국 귀국길은 푸대접의 고생길이었다고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적고 있다. 고도의 건축 외교술까지 등장한 국제 정세에 무지했던 조선 엘리트들이 자청한 고초였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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