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년시절, 유난히 엄했던 선친 때문에 TV를 마음대로 보지 못했다. 외출했다 돌아온 아버지는 TV를 짚어보고 열이 있으면 무조건 마루에 나가 손들고 꿇어앉게 하는 독재자였다. 고등학생 때인가.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싶어 무작정 가출해 친구 집에서 잤다. 그 시절, 내 관심은 온통 김추자였다. ‘담배는 청자, 가수는 추자’란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우연히 교무실에 갔다가 선생님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었다. 추자가 엉덩이를 한번 흔들면 대한민국 남자들이 모두 껌뻑 죽는다고 했다. 신중현 사단이 낳은 초대형 가수다. 파격적인 노출 의상, 야릇한 눈빛, 도발적인 제스처, 육감적인 춤으로 한국 남자들을 설레게 했다. 고등학생인 나도 그 중심에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스캔들은 오히려 그녀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컴백무대가 실패하는 바람에 이제 잊혀 간다.

그 시절, 나는 김정미라는 또 다른 묘한 가수를 만나게 된다. 역시 신중현 사단이다. 얼굴은 몰랐다. 목소리가 워낙 비음이라, 참 독특한 목소리도 있네 하고 생각했다. 쇼킹하다. 몽환적이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들어봐야 안다. 훗날 이런 음악을 일러 ‘사이키델릭 락’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넓은 나팔바지는 그녀의 상징쯤 된다. 거침없는 율동 또한 김추자는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추자 위에 정미였다. 그때부터 나의 관심은 추자가 아니라 온통 정미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대마초 파동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오랜 세월 그녀는 한국인에게 잊혀 왔다. 그런 그녀가 최근 돌아왔다. 장안에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때문이다.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 음악이 바로 그녀의 노래다. 고등학생 때 끔찍이 좋아했던 노래 ‘봄’이었다. 휴일 아침 타이틀 부분만 서너 차례 돌려 봤다. “빨갛게 꽃이 피는 곳/봄바람 불어서 오면/노랑나비 훨훨 날아서/봄바람이 불어불어 오누나….” 서울거리가 봄에 폭싹 잠겨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