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선지급제, 한부모 가정에 큰 도움 될 것” [차 한잔 나누며]

2024-09-30

양세희 양육비이행관리원 이행확보부장

정부가 비양육자 대신 먼저 지원

2025년 7월 시행… 회수 역할 맡아

여성·아동 돕기 위해 10년 전 입사

낯 두꺼운 피고인들 상대로 ‘분투’

“이행지원 제도 발전 보면 큰 보람”

“20만원은 아이를 키우기엔 정말 부족한 돈이죠. 그렇지만 매달 계획이라는 걸 세울 수 있게 되니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양육비 지급 의무를 다하지 않는 비양육자를 대신해 국가가 한부모 가정에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비양육자에게 회수하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내년 7월 시행된다.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데도 배우자로부터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 중 중위소득 150% 이하가 대상이다. 자녀 1인당 월 20만원을 18세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30일 여가부에 따르면 이혼·미혼 가구의 21.3%(6만5000여가구)는 양육비 채권이 있다. 그중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구는 4가구 중 1가구꼴(25.9%·1만7000여가구)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송 등으로 이들의 자녀 양육비 회수를 전담하는 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이행원)이 27일 독립 출범했다. 그간 이행원은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내부 조직이었다.

양세희(40) 이행확보부 부장은 2015년 3월 이행원 설립 당시 원년 멤버이자, 양육비를 내지 않는 채무자를 법정에 세우고 때론 전국으로 찾으러 다니는 변호사다. 양 부장을 포함한 변호사 7명이 직접 소송을 전담한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 개정안’이 통과된 26일 세계일보와 만난 양 부장은 선지급제 통과와 기관 독립의 남다른 의미를 밝혔다.

양 부장은 “노트북 한 대도 없이 책상, 의자, 전화기 한 대만 덜렁 있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했다”고 입사 당시를 회상했다. 10년 전 그는 ‘소외된 여성과 아동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안은 신출내기 변호사였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낯 두꺼운 피고인들을 마주한 시간이 쌓이면서 양 부장은 “고상하게 사명감이라고 말은 하는데, 사실 일의 강도가 가볍지 않아 그런 걸 느낄 새도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래도 이행지원 제도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양육비 지급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로부터 받아낸 이행 금액은 2015년 25억원이었으나 매해 급격하게 늘어나 지난해 1772억원을 기록했다.

26일 국회에서 가결된 개정안에는 선지급제에 더해 선지급금 회수 등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선지급된 경우 채무자 동의 없이도 금융정보를 포함한 소득·재산 조사가 가능하고,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 조사 범위에 가상자산이 추가됐다.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단축될 전망이다. 명단공개 대상에 오른 양육비 채무자들의 최소 사전소명 기간이 3개월 이상에서 10일 이상으로 줄었다. 명단공개가 더 빨리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앞서 3월에는 시행령이 개정돼 27일부터 제재 단계가 축소됐다. 기존에는 ‘이행명령→감치명령→제재조치’로 감치명령 뒤에도 양육비를 안 줄 때만 운전면허 정지, 출국 정지 등 제재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행명령 뒤 바로 제재가 가능해졌다. 양 부장은 “이행명령 뒤에도 제재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려 신청인들 불만이 컸는데 그 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실효성을 높이자면 아쉬운 부분은 끝이 없다. 제재 조치는 출국 금지·운전면허 정지·명단 공개에 국한하는데 해외는 이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양 부장은 “미국만 봐도 일정 금액 이상을 안 주면 바로 행정 제재에 나설 수 있고, 운전면허뿐 아니라 당사자가 전문직일 경우 전문직 자격증도 정지한다”고 설명했다.

양육비 불이행 문제는 아동 복지와 직결된다. 양 부장은 재판장에 설 때마다 이를 절감한다. 그는 “신청인들의 힘든 마음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해져 재판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이미 어른의 얼굴을 한 경우가 많다”며 “한번은 신청인 자녀인 중3 여자아이에게 ‘또래답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말하니 아이 표정이 밝아졌다”고 했다. 이어 “양육비가 더는 사인 간 채권·채무 문제가 아닌 국가가 살펴야 할 일이라는 인식이 이번 법에도 반영된 만큼 미약하나마 이행원의 존재와 발전된 제도가 한부모 가정에 와닿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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