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으면 죽어요” 버럭했다…이어령 아내, 92세 강인숙 후회

2025-09-09

헬스+ 100세의 행복

“밤 10시부터의 시간을 사랑합니다. 어떤 날은 새벽 2시까지 앉아있어요.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입니다. 나 자신과 마주 앉는 시간이구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 92세 강인숙 관장(전 건국대학교 교수·이하 경칭 생략)은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다.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을 컴퓨터로 글을 쓴다고 한다.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 체력이 떨어질 땐 하루를 온전히 쉬며 긴 작업을 위한 힘을 모은다. “이젠 눈이 흐려져 오·탈자도 잦다”고 했지만 그것은 작가로서의 은유일 뿐이었다.

그는 인터뷰 전에 다섯 장 분량의 답변서를 직접 써서 e메일로 보냈다. 문장은 차마 손댈 수 없을 만큼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문체를 되도록 살려 있는 그대로 전한다.

『나는 글과 오래 논다』는 강인숙다웠다. 이 책에서 그는 ‘형용사 하나하나 지울 때마다 전율이 온다’고 했다. 매일 밤, 문장들과 마주한 울림 덕분일까. 그의 눈빛은 이날 통유리를 뚫고 들어오는 여름 햇살보다 뜨겁게 빛났다.

노인의 생기를 마주하며 ‘눈이 부시다’ 생각했다. 세월이 빚어낸 주름은 오히려 그 눈빛을 단단히 떠받치는, 짙은 배경처럼 느껴졌다.

남편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의 추억이 가득한 문학관 곳곳을 소개하는 동안 그는 한 번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젊어 본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늙음도 잘 느껴지지 않아요.”

〈100세의 행복〉 17화는 이어령의 아내가 아닌 문학가, 인간 강인숙을 다룬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세 자녀의 어머니로, 남편 뒷바라지하는 아내로, 대학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살아온 치열한 시간을 따라갔다. 그 고단하고 굴곡진 삶 속에서 지켜온 건강 비결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왜 저녁엔 밥 대신 인절미를 드세요?”, “허리디스크를 낫게 한 체조는 어디서 배운 건가요?”

문학가가 평생 들어보지 않았을 질문들을 던지며 기자는 왠지 부끄러워 종종 얼굴이 붉어졌지만, 강인숙은 마치 학생에게 강의하듯 성실하고 따뜻하게 답해줬다.

남편, 딸, 손주 등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그다. 많은 사람이 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엄마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목차

📌몸무게 35㎏…병약한 워킹맘 시절

📌이어령 곁에서 7년간 죽음 연습

📌건강 시계는 거꾸로…늙어서 고친 병들

📌92세 ‘워커홀릭’ 그녀, 제 2의 전성기

※지난 이야기 복습하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호주서 새 여친과 사랑 빠졌다…‘105세 여행가’ 놀라운 치유

②한국 게이트볼 50년사 증인…94세 회장님 운전대 안 놓는 이유

③92세 노인, 3D카메라 들었다…충무로 전설 ‘김일성 사진가’ 아들

몸무게 35㎏…병약한 워킹맘 시절

지금도 창조적 지식인, 시대를 앞서간 크리에이터로 기억되는 이어령이지만 강인숙에게는 학창시절 함께 문학을 고민했던 동료, 평생을 함께한 연인이자 남편이었다.

어떤 남자와 한평생 살아왔는지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강인숙이 걸어온 길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어령을 아내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면모도 드러난다.

늘 새로운 세계에 몰두하던 남편 이어령은 집안일에 무심했다. 세 자녀의 육아와 살림은 오롯이 강인숙의 몫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 읽기는 사치가 돼버렸다. 30대엔 몸무게가 35kg까지 떨어지고 수전증이 왔다. 갑상선에 혹도 자랐다.

내 시간은 걸핏하면 가족들에게 침해 당했다. 그 속에서 나는 형이상학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문자 그대로 악전고투를 했다. 성과도 없는 그 열망이 삶을 더 고달픈 것으로 만들어 갔다. -강인숙 에세이집『나는 글과 오래 논다』 p.172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갑내기 동창생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일찍이 평론가, 대학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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