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 삶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 '달과 6펜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달은 쉽사리 닿을 수 없는 이상을, 영국 화폐 단위에서 가장 낮은 '6펜스'는 안정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혁신적인 예술을 펼치기 위해 안정적인 삶(6펜스)을 버렸고, 이는 탄탄한 자본과 환경이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는 시중은행과 핀테크의 관계에도 투영된다. 오랜 시간 쌓아온 자본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존 금융사가 혁신을 주도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기발한 시도를 감행하는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 혁신을 만들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 모델과 방대한 조직을 갖춘 기존 금융사(6펜스)는 혁신이 미치는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안정성에 집중해왔다.
반면 핀테크 기업들은 전통 금융사가 복잡한 과정을 요구했던 송금 서비스를 앱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금융 생활을 바꿔놓았다. 비대면 서비스로 은행을 방문하지 않아도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대출 비교·투자·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묶어 전통 금융사들이 시도하지 못한 확장성도 보여주었다.
핀테크 기업들이 이뤄낸 혁신을 금융사들이 따라가면서 전체적인 금융업계는 발전하고 있다.핀테크 기업들이 끊임없이 혁신을 고민하고 있으나 여전히 제도적 장벽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핀테크 업계에 2023년부터 유니콘 기업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소설 '달과 6펜스' 주인공이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환경으로 떠나가 작품을 완성하듯, 우리 금융산업도 혁신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금융지주 핀테크 지분 보유 한도를 5% 이내에서 15%까지 확대한 것은 핀테크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유연한 규제로 핀테크 혁신이 꽃필 수 있게 제도 개선을 할 시점이다.
박두호 기자 walnut_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