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간 못 친 것, 크게 한 번 쳤네요.”
끝날 때까지 끝날 게 아니다. 프로야구 삼성이 짜릿한 반전드라마를 썼다. 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2025 신한 쏠뱅크 KBO리그’ 원정경기서 6-4 승리를 거뒀다. 경기 내내 끌려갔지만, 9회에만 대거 5득점을 올리며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었다. 전날 패배를 설욕하는 동시에 주중 시리즈를 2승1패, 위닝시리즈로 장식하는 데 성공했다. 시즌 41승(1무40패)째를 신고, 한 걸음 나아갔다. 여전히 7위지만, 4위 KIA(43승3무36패)와 불과 3경기 차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삼성엔 이재현이 있었다. 9회 초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안타 1개와 볼넷 2개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여기에 박승규의 밀어내기 볼넷까지 더해지며 2-3 1점차까지 따라붙은 상황. 이재현이 타석에 섰다. 상대 6번째 투수 박신지의 4구를 공략했다. 143㎞짜리 슬라이더가 몸 쪽으로 살짝 높게 들어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담장을 넘겼다. 시즌 17번째이자 통산 1103번째, 그리고 이재현의 3번째 그랜드슬램이 터지는 장면이었다.

이날 이재현은 벤치에서 출발했다. 상대 선발투수 곽빈이 우완 투수인 점을 감안, 좌타 일색으로 선발 라인업을 짰다. 가만히 앉아있던 것은 아니다. 이재현은 “5회 지나고 나서부터는 몸도 풀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계속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치밀한 전략도 한 몫을 했다. 이재현은 “이진영 (타격) 코치님께서 가까운 쪽의 코스를 노리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게 맞는 것 같더라. 그것만 생각하고 들어갔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노림수는 적중했다.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홈런이었다. 다이아몬드를 돌아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이재현을 향해 캡틴 구자욱은 손가락 ‘1’을 가리켰다. 프로데뷔(2022시즌) 후 잠실구장서 처음 맛보는 아치였다. 이재현은 “사실 잠실에서 홈런을 쳐본 적이 없어서 치는 순간엔 잘 모르겠더라. 외야 수비가 멈춰서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구)자욱이형이 ‘잠실에서 홈런 쳐봤느냐’며 자주 놀렸다”면서 “그간 못 쳤던 것, 크게 한 번에 나온 것 같다”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재현은 사자군단을 대표하는 차세대 스타 중 한 명이다. 어린 나이(2003년생)임에도, 지난 2년 연속 100경기 이상 소화하며 주전 유격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수비력은 리그 톱 수준. 타격에서도 잠재력이 크다. 겨우내 미국의 야구 전문프로그램 시설 CSP서 훈련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재현은 “(안 좋을 땐) 직구에 늦는 경우가 많더라. 인플레이 타구가 돼야할 타이밍에 파울이 나오면서 카운트를 불리하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좀 더 유리한 (카운트) 상황에서 빠르게, 좋은 결과를 내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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