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 상용화 전망 교차
빅테크와 스타트업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고성능 양자컴퓨터 개발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양자컴퓨터는 현재의 컴퓨터 방식보다 압도적으로 더 빠른 속도로 계산을 수행할 수 있어 기존의 산업 지형을 뒤흔들 이른바 ‘게임 체인저’로도 불린다. 하지만 양자컴퓨터 활용시기에 대한 업계의 전망은 엇갈린다. ‘아직 멀었다’는 시각과 함께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는 시각이 팽팽히 대립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에게 고성능 양자컴퓨터 개발과 인공지능(AI) 대규모 투자 등의 내용이 담긴 ‘2025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고 13일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1000큐비트(양자컴퓨터 기본 단위)급 양자컴퓨터 개발 등 대형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는 2032년 완성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양자법’(양자과학기술 및 양자산업 육성에 관한 법)에 근거해 양자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양자 과학기술·산업을 육성하는 5개년 종합계획 등을 마련한다.
최근 양자컴퓨터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활용시기를 두고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황 CEO는 지난 7일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기간에 월가 애널리스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유용한 양자컴퓨터가 나오려면 20년은 걸릴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발언 하나에 양자컴퓨터 관련 주가는 폭락했고, 반발이 터져나왔다.
미국 양자컴퓨터 기업 아이온큐의 공동창업자 김정상 듀크대 교수는 지난 10일 공개 석상에서 직접 황 CEO의 발언을 겨냥해 양자컴퓨터의 상용화가 더 빠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투자분석 회사인 DA데이비슨의 기술 연구 책임자 길 루리아는 “젠슨 황의 발언이 다소 이기적이다”고 지적했다. 투자 전문매체 인베스터비즈니스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양자컴퓨팅은 빠르면 5년 안에 기술의 주요 트렌드가 될 것”이라며 “양자컴퓨터가 엔비디아에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투자 분석가 테드 스카이바도 “젠슨 황의 발언은 단순히 양자 산업에 대한 과대광고를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핵심 비즈니스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양자 기술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발전한다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지배력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9년에 세계 최초로 소비자용 GPU를 출시한 뒤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을 장악해온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창사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고용량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AI 기술 특성상 대규모 병렬 연산에 강점을 지닌 GPU가 AI 인프라에 핵심 장비가 된 것이다.
한상욱 양자정보학회장(KIST 책임연구원)은 “이미 엔비디아는 GPU를 기반으로 한 AI 컴퓨팅 시장을 장악한 만큼 굳이 신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며 “기업가라면 당연히 현재의 지배력을 계속 확장해나가고 싶어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당분간 엔비디아는 과도기적으로 GPU와 양자처리장치(QPU)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로 시장을 공략해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양자컴퓨터 시장에서 엔비디아가 어떤 신기술을 선보이며 시장 지배력을 넓혀 나가는지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