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운, 시인·수필가

“이번에 큰일 치르셨다는데 직접 가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 예. 왕할머님, 잘 모셔드렸습니다.”
얼마 전에 정선생님은 스물두 해나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애완견을 떠나 보냈다. 애완견으로 스물둘의 나이는 왕할머니 정도의 나이에 해당되는 것 같다. 2004년 현재 개의 평균수명은 14.6세다. 개의 7세 나이를 사람으로 환산하면 44세라고 한다. 그 이후는 1년이 7년에 해당한다고 하니 사람 나이로 환산해 보니 149세가 된다. 그 사이에 왕할머니의 근황은 자주 접했었다. 제대로 일어설 수가 없는 데 밤에는 세 번씩 소변을 봐야하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세 번 함께 일어나서 함께 베란다로 가서 일을 처리하곤 했었다.
이 대형견을 키우게 된 동기는 지금은 서울의 유명대학 관련학과 교수로 있는 아들이 대학생 때 키우던 애완견을 아들이 분주한 연구로 돌볼 수가 없게 되자 정선생님이 인수하여 계속 키워온 것이었다. 정선생님은 이 날을 대비하여 깨끗한 수의를 미리 구입해 두었다. 임종이 확인되자 견주가 손수 깨끗이 목욕과 염을 했다. 이를 끝내자 그녀도 비로소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고 한다. 하룻밤을 안 방에서 함께 지내고 본인이 경작하는 밭에 2m를 파고 안장했다. 좋은 주인을 만나 복되게 살다가 영면을 맞이한 참으로 행복한 귀천이었다.
며칠 전의 일이다. 저녁 때 걸어가는데 갑자기 무엇이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뒤에서 내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개 한 마리가 등 뒤에서 내 위로 뛰어 올랐다. 젊은 남자 주인은 개 줄을 멀리서 잡고 멀뚱멀뚱 이 장면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주인에게 개 줄을 잘 관리하면서 다녀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는 어떤 대꾸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까지 내 앞에서 그 강아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번갈아 뛰어들면서 천방지축이었고 사람들은 계속 놀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때로는 쓰다듬으면서 지나가던 그 강아지였다. 잠시 후 밝은 곳으로 나와 보니 바지 오른 쪽이 온통 흙과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개들을 데리고 나올 때는 산책용 하네스나 리드줄을 착용해야 하고 법적으로 2m 이내의 길이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개도 사람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선 애완견 산책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많이 확산되었다. 독일에서는 법적으로 애완견을 1일 1회 이상 산책시키도록 규정하고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견주를 처벌할 수 있다고 한다.
개들은 과거에는 그래도 마당, 정원 등에서 자라며 제한된 영역에서나마 뛰어놀면서 제한된 자유를 즐겼지만 요즘은 아파트, 빌라, 원룸 등 실내의 폐쇄된 공간에서 사실상 평생을 갇혀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이상 행동 증상을 보이는 개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정해진 면적 이상의 정원이 있어야 개를 키울 수 있도록 허가해 주기도 한다. 집 평수 뿐만 아니라 마당의 존재 유무, 창문 면적 및 일조량까지 규정되어 있는 나라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경우가 드문데, 수십만 원이 지출되는 ‘애완동물 보유세’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동물보험 비용 부담 때문도 있지만, 이런 주거 제한 법률 때문에 키우고 싶어도 키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얼마 전에 나는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방문 중에 단 한 차례도 길에서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일본인의 기본 생활 철학이 생활 속에 배어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들에게는 애완견들을 데리고 나와서 방뇨 방변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는데 물론 처리를 잘 하는 분들이 있지만 모든 사람과 환경을 배려하는 모습에 항상 아쉬움이 더했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토끼를 젊은 시절에는 금붕어나 새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 거의 매일 토끼풀을 뜯으러 산으로 들로 다니던 시절이 눈에 아른 거린다. 그러나 금붕어나 새를 키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금붕어가 물에 떠 있는 목습을 보거나 새가 바닥에 떨어져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애완동물 키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애정을 쏟아 보살폈으나 그들을 떠나보내는 상황에 되니 잘 감당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애완견은 특별한 동물이다. 애완견들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일부 품종은 매우 활달하고 사람을 잘 따르며, 보호자에 대한 충성심도 크다. 특히 맹인 안내견, 마약 탐지견, 인명 구조견 등은 그 능력과 충성심이 대단한 존재들이다. 가정에서도 강아지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함께 다양한 모색과 털 유형, 성격을 지니고 있어 각 가정의 생활 스타일에 맞는 품종을 선택하고 있고 또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의 경우 처음 입양한 견주가 해당 애완견을 죽을 때까지 돌보는 경우는 12%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다. 애완견을 키우려고 할 때 자신의 거주 환경과 여건이 개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상황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개를 키움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개의 입장에서 제공되는 거주 환경이 그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는 점을 중심 삼아 선택과 양육이 이루어져야 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