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블랙홀 품은 전파은하 규모가 무려 우리 은하 140배 크기

2024-10-28

[비즈한국] 헤라클레스 A 은하는 가시광선으로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하게, 별들이 펑퍼짐하고 동그랗게 모인 타원은하다. 하지만 이 은하의 진짜 매력은 전파 영역으로 관측할 때 드러난다. 전파 관측 결과를 덧붙이면, 은하 바깥까지 멀리 양쪽으로 뻗어나오는 독특한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은하가 품고 있는 블랙홀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양쪽으로 강한 에너지 제트를 토해내면서 남긴 흔적이다. 블랙홀 제트의 규모만 백만 광년에 달한다. 이처럼 전파로 관측했을 때 볼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 제트를 토해내는 블랙홀을 품은 은하를 전파 은하라고 부른다. 이 흔적은 은하 전체를 벗어날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이지만, 이젠 이 정도는 꼬꼬마 수준에 불과하다.

놀랍게도 최근 천문학자들은 총 길이가 무려 2300만 광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너지 제트를 토해내는 은하를 발견했다. 전체 규모가 우리 은하를 일렬로 140개 나열해야 채울 수 있는 정말 엄청난 스케일이다. 일개 은하 하나의 중심에 살고 있는 블랙홀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은하들이 길게 이어지는 우주 거대구조의 필라멘트 규모에 거의 맞먹는다!

사실 천문학자들이 처음부터 이런 괴물 같은 전파 은하를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니다. 원래는 낮은 주파수 대역의 전파로 우주 전역을 훑어보면서 사방에 길게 얽힌 우주 거대구조 속 은하들의 필라멘트 지도를 파악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우주 곳곳에 난폭한 블랙홀을 품은 채 양쪽으로 거대한 에너지 제트를 뿜어내는 은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LOFAR 관측 결과, 강력한 에너지 제트를 토해내는 은하를 8000개나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중에는 정말 압도적으로 거대한 스케일의 제트를 뿜어내는 현장이 있었다. 그 전체 규모만 2300만 광년! 정말 우주 거대구조급의 스케일이라 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거대한 전파 제트를 뿜어내는 존재에 신화 속 거인, 티탄의 이름 중 하나인 ‘포르피리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포르피리온 발견 전까지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파 은하는 2022년 똑같은 연구팀에 의해 발견된 알키오네우스라는 은하였다. 그런데 같은 연구팀에 의해 그 기록이 갱신된 것이다.

이런 거대한 에너지 제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던 천문학자들은 인도의 GMRT 전파 망원경, 그리고 우주 전역 먼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재고 지도를 그리면서 암흑 에너지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관측을 진행하고 있는 DESI 프로젝트 관측팀과 협력해, 이 거대한 제트를 뿜어내고 있는 은하가 누구인지를 특정해냈다. 그 범인은 우리 은하보다 질량이 10배 더 무거운 거대한 은하다. 이 은하는 우리 은하로부터 75억 광년 거리에 다. 즉 우주의 나이가 63억 년이었을 때 존재한 모습을 간직한 은하다.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인 것을 감안하면, 우주 전체 나이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은 정말 앳된 은하다.

초기 우주에서부터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거대한 전파 제트를 남기는 은하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이 정도 규모의 거대한 전파 은하들이 우주 거대구조 곳곳에 충분히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아무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뿜어내는 제트가 거세더라도 그 규모가 500만 광년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제트가 멀리 도달하면서 그 세기가 약해지기 마련이고, 은하 바깥 은하와 은하 사이 공간을 채운 또 다른 가스 입자들과 부딪히면서 서서히 에너지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한 포르피리온 은하의 전파 제트는 우주 거대구조의 필라멘트를 뚫고 나올 만큼 200만 광년이 넘는 엄청난 규모로 뿜어 나온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거대한 규모까지 에너지 제트가 흩어지지 않고, 양쪽으로 곧게 일직선으로 뿜어 나오는 걸까?

한 가지 가능성은 우연하게도 이 블랙홀 제트가 뿜어 나온 방향에 별다른 은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아주 거대하고 텅 빈 보이드가 있었다는 것이다. 제트가 만약 우주 거대구조의 필라멘트 쪽으로 뿜어 나왔다면, 진작 다른 은하, 가스 물질과 부딪히면서 흩어졌겠지만, 텅 빈 거대 보이드로 뿜어 나온 덕분에 계속 에너지를 잃지 않고 멀리까지 퍼졌을 수 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이런 거대한 규모까지 제트가 계속 유지되려면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 수십억 년 넘게 꾸준히 먹방을 멈추지 않고 강력한 에너지를 사방으로 토해냈어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블랙홀이 수십억 년 넘게 먹잇감을 다 소진하지 않고, 계속 에너지를 토해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미스터리다.

블랙홀의 에너지 제트는 수억 광년 규모의 우주 거대구조에 펼쳐진 은하 간 자기장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전기적 전하를 띠고 있는 입자들의 흐름은 결국 우주 공간의 자기장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이다. 양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블랙홀 제트는 일종의 우주 나침반이 되는 셈이다. 흔히 간과하지만, 사실 자기장도 은하가 반죽되고 우주 거대구조가 골격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 중 하나다. 결국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은 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자석 주변에 철가루를 뿌려 주변 자기장의 형태와 분포를 파악하는 것처럼, 블랙홀의 제트와 그 흔적이 퍼져나간 형태를 통해 우주 거대구조의 골격을 만든 자기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빅뱅 직후 무작위로 퍼져 있던 우주 속 초기 입자들이 서로의 중력과 주변 우주 공간의 자기장을 따라 흘러가면서 조금씩 밀도가 올라가고, 은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화려하게 구현한 다양한 우주론적 시뮬레이션의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냥 예쁘게 보이려고 만든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모두 슈퍼컴퓨터를 몇 개월에서 몇 년간 돌려서 나온 엄밀한 계산 결과를 시각화한 결과다. 이런 계산을 우리가 쓰는 일반 노트북으로 하려면 20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구현된 우주론적 시뮬레이션의 과정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높은 밀도로 반죽된 우주 거대구조의 매듭 속 육중한 은하에서 사방으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강력한 에너지가 발산되는 모습이다. 바로 초기 우주에서 왕성한 먹방을 찍으면서 사방으로 강력한 에너지를 토해냈을 블랙홀을 품은 은하들의 흔적이다. 순식간에 많은 양의 가스 물질이 은하 중심 블랙홀을 향해 쏟아져 들어가면서, 폭식을 해버린 블랙홀이 사방으로 둥글게 에너지를 토해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주변의 가스 밀도나 온도 분포가 크게 달라진다. 이 과정은 우주 전체의 진화에서 아주 중요하다. 거센 용트림을 해버린 은하뿐 아니라, 그 주변에 우연히 용트림을 직접 맞아버린 이웃 은하들도 자신이 품고 있던 가스 물질을 빠르게 잃게 된다. 신선한 가스 물질을 갑자기 잃어버린 은하는 이제 더 이상 어린 별을 새로 만들 수 없는, 생명력을 잃은 은하가 되어버린다. 

은하의 진화를 연구한다고 하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별이 진화를 마치고 초신성 폭발과 함께 삶을 마무리하듯, 은하도 언젠간 죽거나 폭발을 하느냐고. 엄밀하게 보면 개개의 별과 달리 은하 자체가 뻥 터지는 그런 폭발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별과 달리 은하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별을 만들 능력이 줄어들면서 조금씩 은하 전체가 어둡고 힘없게 늙어갈 뿐이다. 하지만 폭발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본다면? 예를 들어 전파, 가시광, 적외선, 자외선 등 다양한 파장에 걸쳐 순식간에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현상 정도로 정의한다면, 은하도 충분히 폭발이 가능한 존재다. 은하 중심 강력한 블랙홀 활동으로 인해 사방에 민폐를 끼치면서 흔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은하 중심 블랙홀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과연 우주 거대구조, 그 속에 살고 있는 개개의 은하들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이던 우주의 자기장을 직접 추적할 수 있는 블랙홀 제트라는 새 나침반이 생겼다. 인류는 그걸 활용해 실마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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