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을 든 소녀-가부장 권력에 맞선 약자 연대와 자매애의 가능성

2025-12-02

제목: 바늘을 든 소녀(The Girl with the Needle)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덴마크

상영시간: 123분

장르: 드라마

감독: 매그너스 본 호른

출연: 빅토리아 카르멘 손느, 트리네 뒤르홀름, 베시르 제치리, 요아심 피엘스트루프

개봉: 2025년 12월 1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바늘을 든 소녀’라니, <오디션>(미이케 다카시 감독·1999) 같은 이야기라도 담은 것인가. 제목만 듣고 떠올린 생각이다. <오디션>에서 바늘은 핵심 오브제다. 바늘을 든 주인공이 웃으며 뭔가를 흉내 내며 입으로 ‘끼릭끼릭~’ 소리를 내는 대목이 이 영화의 절정부다. ‘수입 추천 불가’ 판정으로 우여곡절 끝에 영영 극장엔 걸리지 못할 듯싶더니, 2023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스웨덴 출신의 덴마크 감독 매그너스 본 호른의 2024년작 <바늘을 든 소녀>도 따지고 보면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1999년작 영화와 주제 의식이나 함의가 아주 동떨어진 건 아니다. 가부장 권력의 전장(戰場)으로서 여성 신체와 권력의 전복(특히 미이케 다카시 영화의 경우)과 같은 것들이다.

여성 신체와 권력의 전복

영화 제목에서 바늘을 든 ‘소녀’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해 영화의 주인공 캐롤라인은 소녀가 아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과부다. 때는 1919년. 세계대전에 징집된 남편은 행방불명 상태다. 월세는 밀려 있고 캐롤라인은 집에서 쫓겨날 처지다. 부녀수당을 달라는 청부에 연민을 느낀 공장주는 자신에게 기대도 된다고 위로를 건넨다. 결국 두 사람은 연인이 돼 공장주의 아이를 뱄지만, 공장주의 어머니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좌절한 캐롤라인은 공중목욕탕에서 ‘커다란 바늘’로 낙태를 시도했다 실패했고, 우연히 만나 도움을 받은 모녀를 찾아간다. 모녀는 사탕가게를 운영하며 알음알음으로 원치 않게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해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한편 캐롤라인의 남편 피터는 전쟁터에서 심한 안면 외상을 입고 얼굴이 뭉개져 돌아온다. 취업할 수 없는 남편은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안면기형을 파는 ‘프릭쇼’로 연명한다. 남편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지만 키우려고 나무로 된 요람을 사서 캐롤라인의 집을 방문하지만, 아이를 낳은 지 하루 만에 캐롤라인은 앞서 모녀의 사탕가게를 찾아간다.

영화는 다양한 표정의 인간군상 얼굴을 오버랩해 보여주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어딘가의 전시회에서 한번쯤 봤음 직한 표현주의 시각 퍼포먼스와 비슷하다. 2시간 넘은 상영 시간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필름으로 달리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시네아스트, 예술주의 영화라고 선언한다. 영화 중반 공장 문이 열리고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시퀀스가 삽입돼 있는데,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뤼미에르 형제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ère à Lyon)>(1895)에 대한 오마주다. 그렇다고 난해하거나 고도의 상징을 담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가부장 권력과 얽힌 모성성(maternality)에 대한 비판과 그에 맞선 약자 연대와 자매애의 가능성을 짚고 있다. <부고니아> 원작 <지구를 지켜라>에 등장하는 동춘서커스단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순이처럼 서커스 단원은 영화예술에서 마르크스적 경구로 번역하자면 ‘잃을 건 쇠사슬밖에 없는’ 피억압자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종종 소환된다.

가부장 권력에 맞선 여성들의 대리전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보면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히고 있는데 덴마크의 영아 연쇄살인범으로 유명한 오베르뷔(박스 기사 참조)가 사탕가게를 운영하는 모녀의 엄마다. 가부장 권력을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영화는 여성들을 갈등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아이를 밴 캐롤라인을 내치는 것은 “만약 너희들이 결혼하면 한 푼도 재산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공장장의 어머니이며, 재판정에 선 오베르뷔가 “좋은 집에 입양되지 않을 걸 아이를 버린 엄마들도 알고 있지 않았냐”고 자기 변론할 때 법정 객석엔 남성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고 여성들만이 이구동성으로 오베르뷔를 규탄하고 있다. 보육원에 남겨진 오베르뷔의 딸은 그 후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를 텐데 영화가 택한 결말은 아무래도 작위적이다.

영화에서 오베르뷔는 자기가 저지른 다섯 건의 영아살해 유기장소를 밝히는 조건으로 딸과 면회를 신청하는데, 영화에서 판사는 실제 중년의 나이 많은 오베르뷔가 딸을 낳았을 리 없다며 차갑게 거절한다.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영아 연쇄살인마 오베르뷔는 실존 인물이다. 1887년생으로 코펜하겐의 교도소에서 1929년 옥사할 때 나이가 42세였으므로 실제 영화에 묘사된 인물보다는 젊은 편이었다.

오베르뷔가 정확히 몇 명의 아이를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913년, 그러니까 26세 때부터 7년간 최소 9명에서 25명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래도 자신의 딸을 끔찍하게 아낀 것처럼 묘사돼 있지만, 실제 오베르뷔가 살해한 영유아 중엔 자신의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사탕 가게를 하는 거로 돼 있지만, 실존 인물 오베르뷔는 아동 보호사였다.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목 졸라 죽이거나 물에 빠뜨린다던가, 심지어는 석조 난로에 태워죽이기도 했다(영화에서 묘사된 살해 수법이기도 하다). 오베르뷔의 변호인들은 그가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이 연쇄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1921년 재판에서 오베르뷔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자료를 보니 덴마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20세기에 세 사람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오베르뷔였다. 다른 두 사람처럼 오베르뷔도 실제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복역 중 사망했다고 한다. 오베르뷔의 이야기는 <바늘을 든 소녀>와 같은 해에 제작된 북유럽 공포영화 <천사의 아이들>(Englebørn)이라는 작품의 소재로도 사용됐다. 인터넷에 공개된 영화의 시놉시스를 보니 젊은 예술가 부부가 한 아파트에 이사 오는데 다락방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오베르뷔가 죽인 죄 없는 아이들의 원귀라는 설정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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