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추석 연휴, 장마 같은 비를 만났다. 오래 기다린 비도 하루 이틀은 감사하지만, 길어지면 가을 햇살과 짙푸른 하늘이 그립기 마련이다. 비 오는 날, 수채화 같은 낭만은 지구 밖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저 칠흑 같은 우주로 눈을 돌리면 상상 밖의 물질로 된 ‘비’를 뿌리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 태양계 밖으로 나갈 것도 없다. 천왕성과 해왕성에는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비처럼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 대기 중의 메탄은 지구 대기압 수십만 배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쪼개지며, 이때 나온 탄소 입자는 고온·고압에서 압축돼 다이아몬드 결정으로 변한다. 그 결정은 빗방울처럼 그 행성의 핵을 향해 수십만 년에 걸쳐 켜켜이 내려앉는다. 우리가 잠수함처럼 튼튼한 탐사선을 타고 가면 수조 캐럿의 ‘보석비’를 만나는 행운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외계행성에는 철 비가 내린다. WASP-76b는 ‘핫 주피터(Hot Jupiter)’, 즉 뜨거운 기체행성이다. 이 천체는 모항성 가까이 붙어, 늘 같은 면만 자신의 ‘해’를 향한다. 그 영원한 낮 지역은 고온으로, 철이 증발해 증기로 변하며, 증기는 바람을 타고 춥고 영원한 밤 지역으로 간다. 춥다고 해도 사실은 용광로보다 뜨겁다. 식은 쇳물이 ‘강철비’처럼 내리는 이곳은 상상하는 것조차 무섭다.
HD 189733b라는 외계행성은 코발트블루로 덮여있다. 그 찬연한 색은 바다가 아니라, 대기 중에 떠다니는 규산염 때문이다. 이번에는 ‘유리 조각의 비’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비가 마하 5.6의 강풍을 타고 휘몰아친다는 것. 그래서 총알 같은 유리 파편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낯선 풍경은 실제 관측과 모델로 재구성된 연구 결과다.
연휴에 장마가 와도 좋다. 가을의 마른 대지, 논과 밭을 적셔 곡물과 과일을 살찌우는 ‘물의 비’가 감사하지 아니한가.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