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에 합의했다. 국제사회는 이번 휴전을 환영하고 있지만, 이 순간에도 가자지구는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휴전 협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평화를 향한 진정한 진전이라기보다 복잡한 국제정치적 계산의 산물임이 드러난다.
460일 만의 휴전 합의로 휴전과 인질 교환이 이뤄진 지난 주말, 국내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이스라엘인 인질 3명의 석방을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에밀리 다마리, 로미 고넨, 도론 스테인브레허가 471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감동적인 순간들이 지면을 가득 채웠다. 그들은 각각 음악축제와 키부르의 집에서 납치되었다. 같은 날, 20년 넘게 이스라엘의 ‘행정구금’ 제도하에서 재판도 없이 수감되어 있던 팔레스타인 여성 인권운동가 칼리다 자라르도 석방되었다. 자라르는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의 일원으로, 1989년 국제여성의날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처음 체포된 이래로 재판이나 기소 없이 감옥에 있었다. 하지만 자라르 석방에 주목한 국내 언론은 없었다. 이 여성의 석방에 대한 상반된 시선들은 이번 휴전 협상의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포로로 잡혔다가 풀려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판도 없이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진정한 평화가 아닌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번 휴전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휴전은 평화 협상이 아닌 포로 교환의 성격이 짙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4만6899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고 11만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이러한 인도적 참상의 해결은 휴전 협상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의 90%가 폐허로 변했고, 2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은 기본적인 생존조차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15개월간의 전쟁은 가자지구의 사회기반을 완전히 파괴했다. 전기, 수도, 하수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학교와 병원은 폭격 대상이 되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인한 독성물질은 대기와 토양, 물을 오염시켰다. 수많은 가정이 해체되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돌아갈 일상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건 휴전 이후 가자지구 통치구조다. 미국은 개혁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국제 파트너들이 참여하는 임시 통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아랍 국가들의 안보 지원을 언급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이 제안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990년대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된 2국가 해결안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가자지구의 재건과 평화 정착을 위한 구체적 계획 없이 이루어진 이번 휴전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 협상이라 보기 어렵다. 특히 이 휴전의 시점이 미국 트럼프 제2기 정부 출범과 맞물린다는 점은 이번 합의가 중동 평화보다는 강대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임을 시사한다. 4만6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전쟁이 강대국들의 정치적 계산에 휘둘린다는 사실은, 언제든 또 다른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